▲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지난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래쪽부터 우리군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함.
해군 제공
과거 냉전시대에는 싸워서 이기는 것을 안보의 본질로 생각했다. 그래서 군사력이 곧 안보 그 자체였다. 세계를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세계관에는 그러한 안보관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자마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전쟁을 겪은 분단국 대한민국으로서는 국방력은 국가생존과 직결한 문제였다. 해방 이후 50여 년 동안 보수세력들이 대한민국을 운영해왔다. 보수세력은 국가안보의 책임을 맡았다. 그 사이에 안보는 보수가 유능하다는 허구적인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세계는 변화하였다. 2차 대전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냉전의 국제질서는 1990년을 전후하여 50여 년의 수명을 다하였다. 냉전이 끝나고 지난 30년 동안은 냉전시대와 다르게 동서 진영이 협력하는 탈냉전시대였다. 우리는 탈냉전을 맞이해서 중국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하고 교역을 하였다. 이제 탈냉전의 30년이 저물고 세계질서는 또 다른 낯선 곳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세력들의 안보전략은 '오직 힘'을 강조하는 냉전시대의 전략에 머물러 있다.
튼튼한 국방은 현대안보에서도 기초가 된다. 변화하는 국제정세는 국가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도 다차원적으로 만들고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는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다양하다.
현대안보의 기초가 튼튼한 국방이라면, 현대안보를 실현하는 수단은 유능한 외교다. 국방과 외교를 융복합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수단을 다양화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안보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진보정부가 평화를 추구하면서 튼튼한 국방을 뒷받침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보수는 수구세력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수구세력이 취하고 있는 냉전적인 안보관에 대한민국 보수가 압도당하는 형국이다. 합리적인 보수세력조차 수구세력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안보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구세력이 꼬투리 잡아서 이념논쟁이 발생하면 피로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수구세력의 안보관을 그대로 따르고 마는 것이다. 시대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보수세력은 결코 보수가 아니다. 수구세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분파일 뿐이다.
수구세력은 힘을 숭상할 뿐이다. 그들에게 국가의 외교가 추구해나가는 세계는 오로지 흑과 백의 양극단만 있을 뿐이다. 외교는 양극단 사이에서 회색의 영역을 넓히고, 그 영역에서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극단에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적대하고, 아세안은 소홀히 하고, 미일 외교에만 '몰빵'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이 이 같은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몰빵외교를 펼치면서 힘만 쓰는 평화를 추구한다면 그 결과는 안보불안이다. 한반도를 핵보유국가들이 핵군사훈련을 하는 무대로 내어주는 것은 무능한 안보의 산물이다.
수구세력은 불안한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 총선을 앞두고 북한에게 총격을 부탁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판문점에서 북한이 총격을 가하면 국민들 사이에서 안보 불안감이 조성될 것이고. 그 결과 총선에서 수구보수세력들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뿐만이 아니다. 북한이 금강산 댐을 지어서 서울을 물바다로 잠기게 할 것이라는 세계적인 사기극을 펼친 세력도 수구보수세력이다.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만드는 진보의 안보
지금은 한국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냉전시대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 UNCTAD)는 2021년도에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운크타드가 창설된 1964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 변동을 이룬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한다.
운크타드 발표가 있기 직전에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은 우리의 위상이나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가적인 역량에 대해 국제사회의 평가와 인정이 뒤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크타트 총회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한 결정에 195개국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운트타드 회원국 195개국 만장일치의 표결은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신장되었다는 뜻이다. 해마다 국가별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영국의 '브랜드 파이낸스'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세계 10위 수준이다. 세계인들이 한국에 열광하고 있고, 한국은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루고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비전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한반도, 국민이 행복한 나라이다. 우리의 미래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공기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안보'이다. 그 새로운 안보는 '평화를 만드는 안보'이다.
평화를 만드는 안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가자지구를 모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델보다는 교류협력으로 번영을 이루고 있는 독일과 같은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맺어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이루고,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모델을 추구하면서도 보수정부보다 더 튼튼하게 국방비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수구보수와 다른 진보의 안보이다.
- '사의재의 직필' 고정 필진
정해구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도종환 전 문화체육부 장관, 박두용 한성대학교 교수, 조대엽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 김유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 염한웅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 박능후 포럼 사의재 상임대표(전 복지부 장관), 정현백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전 여가부 장관),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 김연명 중앙대학교 교수, 반상진 전북대학교 교수, 백선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