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이자 참석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 정책에서 2016년 강령이 자유 시장과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면, 새 강령은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더 중시한다. 미국을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전환"하고 "세계 최고의 에너지 생산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016년 강령이 공정 무역을 주장했다면, 새 강령은 훨씬 더 보호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외국산 상품에 대한 기본 관세"와 "중국의 최혜국 지위 철회"를 예고하며, "연간 1조 달러 이상의 상품 무역적자"에 대한 대응책으로 합리화한다.
외교·안보 측면에서 2016년 강령이 글로벌 리더십과 동맹 강화를 강조했다면, 신 강령은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한다. "세계 최강의 군대 재건"을 공약하면서도 "미국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위협받을 때만"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선택적 사용 입장을 보인다. 동맹 강화를 단 한 차례 언급하지만, 미국 전역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 등 '자강'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이민 정책은 더욱 강경해졌다. "국경을 봉쇄하고 이민자 침공을 중단"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추방 작전 수행"할 것을 공약한다. '침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국경 강화와 불법 이민 문제를 국가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의미다. 마약·인신매매 카르텔과의 전쟁을 위해 군사력 동원도 언급한다.
교육 정책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2016년 강령이 학교 선택권과 지방 교육당국의 자율성을 강조했다면, 새 강령은 "비판적 인종 이론, 급진적 성 이데올로기" 등에 명확히 반대하며, 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한다. 이는 교육을 통해 보수적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의도다.
기술 정책도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했다. 새 강령은 중국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는 "전기차 의무화를 취소"하고 "비용이 많이 들고 부담스러운 규제를 삭감"하겠다고 명시한다. 인공지능(AI), 암호화폐, 우주 탐사 등 신기술 분야에서의 미국 주도권 확보도 강조한다.
이렇듯 패권국이 자국 이익 우선주의에 입각해 보호주의와 일방주의를 강화하면 국제질서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트럼프의 공화당은 동맹 관계를 어떻게 재조정한다는 걸까? 강령은 "공동 방어"에 제대로 기여해야 한다고 할 뿐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트럼프의 전략적 침묵
이번 강령에서는 한국, 북한, 한반도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2016년 강령이 "대한민국과의 동맹을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며,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한국만 특별히 생략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일본, 호주 등 다른 동맹국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다. 중국 견제를 국가 대전략의 핵심으로 천명하지만 대만 문제도 언급하지 않는다.
강령이 짧아진 이유도 있지만, 이는 분명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제 관계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명시적 언급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 먼저 속내를 드러내기보다 입을 닫고 있어야 더 많은 것을 얻기도 한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트럼프와 공화당이 전략적인 이유로 침묵하는 것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이번 신 강령의 '전략적 침묵'은 동맹 관계 재조정 협상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맹국에 먼저 패를 보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동맹 의존도를 줄이고, 양자 관계에서 미국의 비대칭적 힘의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명시적 입장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향후 북한과의 관계 설정이나 주한미군 문제 등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두는 효과가 있다. 한미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요구나 제안보다 더 높고 강한 역제안을 할 것이 유력하다.
또한 이 침묵은 트럼프에게 광범위한 외교적 재량권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협상에서 기존 합의나 규칙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얘기다. 즉, 기존 질서의 유지나 복원이 아니라 '재편'에 방점을 찍은 전략이다. 한미관계에서도 기존 합의에 구속되지 않고 일방주의적 접근을 취할 개연성이 크다.
한편 이번 강령은 적대국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이익에 따라 적대국과도 협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 견제를 최대 목표로 하되, 이념 및 가치 기반의 진영을 묶어 봉쇄하는 전략보다는 중국과 그 우호세력 내부의 균열을 유도하는 공세적 접근법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분할 정복(divide & conquer)" 전략이 상대가 두려워하는 강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기대에 더 부응하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북중러 3국 관계의 가장 약한 고리인 북한을 매개로 북한-중국, 북한-러시아 관계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인권과 가치에 기반해 적대시하는 것보다 북한과의 직접 외교로 북핵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에 더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왔다. 작년엔 그와 나눈 편지들을 포함한 서간집을 발간해 정치자금을 모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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