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CCTV에 담긴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의 화재 상황. 오전 10시 30분 3초 1차 폭발 후 42초 만에 현장이 짙은 연기로 가득찼다.
중앙긴급구조통제단, 오마이뉴스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불법 파견된 일용직 노동자들은 회사의 구조와 생산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안전 체계에서도 배제되거나 소홀하게 취급됩니다. 원청회사로서는 그게 다 비용이 들어가는 때문입니다.
참사 당시 CCTV를 통해 드러난 불길이 확산하는 가운데, 당황한 희생자들이 탈출구가 없는 밀폐된 공간으로 대피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원청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화재 등 재해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소홀하게 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경기남부경찰청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아리셀 근무 노동자들은, '아리셀'로부터 실질적 산업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안전교육이 미비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합니다.
그런데도 원청기업 '아리셀'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되어 3년간 약 580여만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고 합니다. 기업 스스로 위험성을 평가해 평가 인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안전보건공단이 심사 후 적합 사업장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에 대한 지적에 노동행정 인력의 한계를 호소합니다. 위험성 평가를 기업 자율에 맡기는 현행 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기대하기엔 난망해 보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노동자의 안전을 기업과 중앙정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감시와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는 지자체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이기도 합니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산안법'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 지역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생겼습니다.
이번 재해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의 경우 산업 재해에 취약한 상황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까지 지난 5년간 화성시의 산업 재해 사망자는 122여 명으로 2위 평택시(77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고 인구 규모가 큰 고양시(63명)의 2배에 육박했습니다.
120여 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산재 예방과 노동 안전 보건 조례를 제정하던 2022년까지 화성시에는 노동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부서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산업 재해예방과 노동 안전 보건 증진에 관한 조례도 제정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2023년 5월 경기도 산하 기초지자체로는 다소 늦게 산업 재해 예방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공식적인 조직도에서 관련 조례에 따라 산재 예방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업무가 분담된 담당 공무원은, '기업투자실 기업지원과' 소속 주무관 1명이 전부입니다.
인구 100만 명에 육박하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업체가 입주한 기초지자체에서 빈발하는 산업 재해를 예방하기에는 다소 벅차 보이는 인원입니다. 물론 이는 화성시만의 문제는 아니며 안산시 등의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다수 기초지자체도 같은 실정입니다.
화성시는 이번 화재 참사를 계기로 지난 6월 28일 '화성시 산업 안전본부'를 설치해 시의 주도하에 고위험 기업에 대한 산업 안전 진단 및 안전 관리,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산업 안전 교육 등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뒤늦게나마 지자체가 산안법상의 산재 예방 의무를 다하기 위한 적극적 행정 의지를 보이는 것은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방향은 의문입니다. 화성시는 산업 안전본부를 기업의 진흥을 담당하는 화성 산업진흥원 산하 기구로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기업의 자기 규율 예방 체계를 강조했습니다.
이번 화성 화재 참사는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투자를 기업의 자율에 맡겨놓았다 벌어진 사태입니다. 기업 스스로의 자기 규제가 실패한 전형적 사례인 만큼 지역 내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등 기업의 탐욕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를 포함하여 산재 예방과 노동 안전 보건 증진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화성시에는 22개 산업단지에 약 2만 8천여 제조업 사업장이 들어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제조업 사업장이 있습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생산설비가 증축되며 전국에서 일거리를 찾아 많은 노동자가 몰렸고 이주 노동자 역시 약 2만 4천여 명 규모로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일합니다.
화성시는 조직도상 공식적 업무 분장에서 지자체를 홍보하는 홍보담당관실에는 33명의 공무원을 배치하고, 도시디자인과 경관을 계획하는 도시기획단에는 16명의 공무원을 배치했습니다. 또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지원하는 기업투자실에는 38명의 공무원을 배치해 유수 기업의 유치와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노동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된 부서도 없는 현실과 사뭇 대조적입니다. 기업 친화 도시 구축 노력만큼 노동자의 안전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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