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내 중소·중견기업 환경(E) 부문 취약지표 5항목2022~2023 ESG 실사데이터 분석 결과. 자료출처_대한상공회의소
오마이뉴스
우리나라 제조업이 공급망 실사에 대응할 역량이 있을까?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대기업들의 협력사 1278곳을 대상으로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실사 결과를 보고했는데, 공급망 실사지침 대상인 환경 분야는 10점 만점에 2.25를 받아 고위험으로 분류되었다. 특히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0.32, 생물다양성 보전은 0.33을 받아 가장 하위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처한 실태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로펌 '루스 라보리스'(Lus Laboris)는 홈페이지를 통해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 수는 1만 8000개, 그중 중소기업은 1만 6000개로 '공급망 실사지침 대응 역량이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평가했다.
유럽연합 공급망 실사지침은 예방 단계에서부터 준비가 안 된 협력사들과 계약 및 거래를 취소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준비가 안 된 한국 제조업에 일파만파로 그 영향이 확대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이 경우 직접 고용인원이 약 33만 명이고, 전후방 산업으로 약 15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한다. 계약과 거래가 취소된다는 것은 이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지역공동체가 위기에 처하고 국가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국 자동차, 이차전지, 반도체, 선박 등 메이저 제조 기업들이 최후에 어떤 선택을 할까? 필자가 취재한 현대차그룹의 경우, 당장은 협력사들을 지원해서 함께 가겠다고 하나 조만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한국이 공급망 실사지침에 대해 국가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을 때 나타날 결과다. 다수 중소기업은 계약을 취소당하고, 그 빈자리들을 공급망 실사지침에 적응한 중국과 일본, 아세안의 공급망이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생존전략은 정치화 아닌 표준화
선진국들의 더 강력해진 탄소중립 무역장벽, 한국은 생존 전략이 있을까? 탄소중립 무역장벽이 없는 아시아로 수출 다각화를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의 무역 흑자를 주도하고 있는 자동차를 아시아 주요국에 얼마나 팔 수 있을까?
1월 28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한국 자동차 수출 실적을 발표했는데, 미국 등 북미지역에 155만 대, 유럽연합에 43만 대, 아시아 주요국인 중국에 2500대, 일본에 1500대를 수출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일본에 3000대도 못 팔았다.
2023년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한국은 대규모 무역 흑자를 보았다. 반면 중국에서 180억 달러(24조 원), 일본에서는 9조 2914억 엔(83조 9000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보았다. 이제 한국의 수출과 제조업은 탄소 무역장벽을 세우고 있는 유럽연합과 북미 등 선진국의 장벽을 넘어야 살아남을 것이다.
탄소 무역장벽을 넘으려면 한국은 탄소시대에 익숙해진 습관을 버려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탈탄소라는 길을 선택해야 산업과 사회, 국가의 생존 전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정치화가 아닌 표준화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 필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국제기구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원'의 백승주 부원장과 기후위기 대책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아시아개발은행이 아시아 각 나라의 산업, 사회구조의 '탈탄소 전환'과 '기후대응 관련 국제표준' 개발과 보급에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후 관련 국제표준은 탈탄소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전략과 이행 기준인데, 지금 선진국들이 탄소중립 무역장벽에 이를 채택하고 적용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회계표준, '세계자원연구소'의 '온실가스 산정과 보고 표준' 등을 국제표준으로 정하고 탈탄소 전략에 적용하고 있다.
2023년 12월 7일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기후목표 달성 논의가 매우 '정치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 정부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자 산업계가 반발하여 걷잡을 수 없는 부실로 이어졌고, 현 정부는 새로운 전술(원전, 수소 등)을 채택했지만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실행할 해법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예산에서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사업' 등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탄소중립 핵심 기술개발'(R&D)은 1055억 원 중 643억 원을 삭감했다. 이렇게 기후목표가 정치화될 때는 선택 가능한 방향도 협소해진다.
국제표준이 정해졌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세계시장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 '갈라파고스화'될 수 있고, 이는 국제적인 고립을 뜻한다. 더 강력해진 탄소중립 무역장벽 앞에서 정치화가 아닌 국제표준을 중심으로 산업, 사회, 정치 분야에서의 리더십이 과감하게 발휘되어야 한국의 생존 전략도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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