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채널A가 보도한 [현장영상] "루즈벨트는 635번 거부권" '채상병특검법' 거부권 엄호
채널A
"635번의 거부권 행사!"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일부 언론이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하며 인용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기록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실제로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상원 웹사이트에 따르면 1789년 이후 2024년 5월까지 46명 중 39명이 총 2596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이 45건, 민주화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4번, 1번, 2번 행사했다.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역사와 제도적 맥락을 무시한 오류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12년 넘는 장기 집권, 뉴딜 정책 등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는 총법률안의 1.7%에 불과하며, 그 비율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맥락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주요 원인은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이다. 분점정부란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상원 또는 하원의 다수당이 다른 경우를 의미한다. 한국으로 치면 여소야대 상황에 해당한다.
역사적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루스벨트의 경우도 분점정부 때문에 635회나 되는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측하기 쉽다. 국민의힘에서 루스벨트 사례를 인용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여소야대 정국은 없었다. 루스벨트는 민주당 소속이었고, 1933년부터 1946년까지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압도적 다수당이었다.
루스벨트의 거부권 행사 횟수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재임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그는 1933년 3월부터 1945년 4월까지 12년 넘게 재임했으며, 이는 역대 최장이다. 당시에는 대통령 연임 제한에 대한 헌법적 규정이 없어 총 4번이나 연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대공황으로 인한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와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었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당시 미국 경제는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산업 생산은 1929년에 비해 약 45% 감소했고, 국민소득은 30% 이상 줄어들었다. 실업률은 25%에 달해 약 1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농산물 가격은 60% 이상 하락하여 농민들의 어려움도 커졌다.
이런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루스벨트는 공공사업 확대, 실업자 구제 프로그램, 농업 및 산업 지원, 사회보장제도 도입 등을 포함한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 지출과 적자 재정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인 재정부양책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뉴딜정책에 반대하는 그룹이 있었다. 보수적인 남부 민주당 정치인들은 지역주의적 이해관계를 강조하며 연방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반대하고, 주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으며, 인종 차별적 정책을 유지하고자 했다. 루스벨트는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보장제도 도입과 노동자 권리 강화 법안들을 추진하며 거부권을 자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