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의원이 총선을 앞두고 북부 헤닌-비몽의 시장을 방문해 지역 주민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이들의 공약과 비전도 논리적 전제와 귀결로 이뤄진다. '~면, ~다'는 식이다. '자립적 경제체제를 갖추면, 관세장벽을 높이면, 세금을 줄이면, 통화 정책을 바꾸면' 등이 전제에 해당하고, '국가 이익을 높인다, 자국민을 보호한다, 성장을 촉진한다' 등이 귀결이다.
당연히 모든 정치적 메시지의 귀결은 복리와 부강으로 향한다. 문제는 이론 수학과 달리 실질 경제에서 전제와 귀결의 관계가 필연적 진위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관세장벽을 높이면 국가이익이 늘어난다'의 조건문은 어떤 경우에도 이론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비껴갈 수 있게 한다.
관세장벽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국가이익이 늘었다면 논리적으로 유효한 명제 관계다. 관세장벽을 높이지 않았고 국가이익이 줄었다면 역시 논리적으로 유효하다. 관세장벽을 높이지 않았지만 국가이익이 늘었다 해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유일하게 비난받을 상황은 관세장벽을 높였지만 국가이익이 늘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빠져나갈 길은 있다.
극우세력이 압도적 선두 달리는 이유
실물 경제의 모든 조건 관계는 필연적 관계가 아니다. 국가이익이 늘게 만드는 요인은 관세정책 외에도 무수히 많다. 마찬가지로 국가이익이 줄어들게 하는 데에도 역시 관세정책과 관계없는 무수한 다른 요인들이 있다. 관세장벽은 높였지만 다른 요인들에 의해 국가이익이 줄 수 있기 때문에 특정 관세정책의 유효성 판단 역시 불가능하다.
정책을 둘러싼 정파 간의 끝없는 논쟁은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얼마든지 변호가 가능하고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다. 다만 국가이익이 줄었을 때 가장 유리한 쪽은 아직 한 번도 종합적 정책 묶음을 집행해 보지 못한 쪽이라는 점이다. 전제를 아직 실현하지 않은 이상 이들의 조건문이 '참'일 가능성이 그나마 높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극우세력이 다른 모든 정파에 앞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악화일로의 경제 상황 속에서 아직 프랑스 국민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유일한 정파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꼭 먹어봐야 X인지 아는 거 아니'라는 식이었다면, 이제 많은 프랑스인이 '그래도 먹어봐야겠다'고 달려든다.
최근까지 극우의 주요 지지 세력이 저소득, 저학력층이었다면 지금은 고소득, 고학력의 전문직, 관리자들이 대거 극우를 향한 지지로 이동했다. 특히 이민정책과 관련한 인식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이민 억제 정책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나 가장 손쉬운 방법인 '소수자와 약자 때리기'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문제로 모든 사회 이슈를 몰고 갈 때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관리직 종사자들이 빠져나갈 길이 열린다. 저학력, 저소득, 단순직 종사자들로부터의 공격을 우회시킬 수 있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비판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이민자들 때문인 이상,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순화시킬 수 있다.
이민 억제는 앞서 나열한 극우 정당의 모든 정책과 부합하는 가장 쉽고 빠른 정책변화다. 극우 지지 세력에게 지금까지의 프랑스 이민정책은 충분히 관대했고, 이제는 억제가 유일한 답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쉽게 프랑스인들의 눈과 귀를 점령했다. 기존 세대에게는 전통적인 언론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는 틱톡과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서다.
정치와 미디어의 새로운 만남
▲지난 13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보도한 "국민연합의 틱톡 전략에 좌파는 K팝에서 영감을 받은 '쇼츠'와 '직캠'으로 대응"
르몽드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현재 프랑스의 미디어 산업은 정보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어 엔터테인먼트가 주를 이루는 단계에 와 있다. 심지어 엔터테인먼트가 정보를 담당하는 영역에까지 왔다. 이제는 정보도 재미있지 않으면 외면당한다. 이렇게 극우는 뉴미디어를 통해 젊은 층의 눈과 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젊은 좌파들의 소통 전략은 이러한 상황인식에서 시작된다. 이들 역시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그러다 재미의 폭발적 전파력이 이들의 메시지를 순식간에 확산시키는 상황으로 이끈 것이다. 케이팝이 가진 재미의 폭발력을 정치에 접목시킨 경우다. 프랑스 좌파들은 틱톡의 무제한적 정보확산에 맞서 케이팝과 함께 유쾌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결연함이, 녹색당(Les Verts)의 꼼꼼함이 트와이스의 발랄함과 접목된다. 저들의 '카리스마'가 이들의 '블링블링'을 만나 모르는 사이에 설득력이 녹아든다. 케이팝에 익숙한 젊은 좌파 지지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다수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프랑스 정치의 새로운 문화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본질적 문제를 가리는 혹세무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 앞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은 한국의 발랄함과 익살에 손을 내밀고 있다. 정치와 미디어의 새로운 만남이 양 갈래의 길 앞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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