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1일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는 모습.
연합뉴스
13시 30분부터 회의에 참석한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회의 참석 전까지 이종섭 장관이 해병대에 이첩 보류를 지시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장관은 유 관리관에게 그러한 지시를 하게 된 배경도 설명해 주지 않았고, 그저 '군인 사망 사건의 이첩 방법'에 대해서만 물어봤다고 한다. 법무관리관은 국방부 장관의 법무 영역을 보좌하는 간부다. 그런데 장관은 그런 법무관리관에게 한마디 조언도 구하지 않고 일단 이첩 보류부터 해병대에 지시한 뒤 사후에 지시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물었던 것이다. 이 장관이 자기 판단으로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고 하기에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허태근 정책실장 역시 회의에 참석한 뒤에야 이첩 보류가 지시된 사실을 인지했다고 진술했고, 점심시간 전인 오전에도 장관을 만났을 때 채 상병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고도 진술했다. 그가 기억하는 회의는 장관이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이첩 보류 권한이 장관에게 있는지, 군사법원법상 이첩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봤고 유 관리관이 대답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허 실장은 국무총리 주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종범 부사령관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회의 석상을 벗어나 장관의 10가지 지시사항은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전하규 대변인도 장관이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8명의 혐의를 모두 특정해야 하느냐고 물어서 수사기록만 넘어가면 경찰이 수사할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중 세 사람 모두 현안 토의의 주된 내용을 '이첩 방법'에 대한 장관의 문의와 법무관리관의 답변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화가 오가던 중, 정종범 부사령관이 장관 집무실에 도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재은 법무관리관 진술에 따르면 장관이 유 관리관으로 하여금 정종범 부사령관에게 방금 전 본인에게 보고했던 군사법원법상 이첩 방법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라고 지시하곤, 중간 중간 끼어들어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유 관리관은 정종범 메모 중 '법무에서 최종 정리', '누구누구 수사 언동하면 안됨'등은 자기가 말한 내용이 아니라고도 진술했다. 정종범 부사령관이 장관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종범 메모에는 '이첩 보류'와 전혀 상관없는 특이한 지시사항이 하나 있다. 바로 6번 지시사항 '휴가 처리한 후, 보고 이후, 형식적 휴가 정리'다.
맥락상 휴가와 관련된 내용은 임성근 사단장의 신상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1시 57분경 이 장관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파견 조치 된 임성근 사단장을 정상 출근시키라고 지시했다. 이때 임성근 사단장은 파견 준비를 위해 부대로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파견이 취소되었으니 그냥 미출근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1시간 뒤인 지난 12시 54분, 임성근 사단장은 7월 31일을 휴가로 처리해달라며 '당일 소급 휴가'를 전산상으로 상신한다.
그런데 법정에 나온 유재은, 허태근, 전하규 세 사람 모두 정종범 메모 내용 중 임성근 사단장 휴가 관련 지시는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고 답했다. 다른 메모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진술을 하던 사람들이 유독 임성근 휴가 문제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한 것이다. 각자 자신의 소관 업무가 아니거나, 일찍 이석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종범 메모에는 '휴가'와 관련된 지시가 명확히 적혀있고, 전하규 대변인 역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메모에 적힌 휴가 관련 지시가 임성근 사단장 휴가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술했다.
진술과 증거를 종합하면 이종섭 장관은 현안 토의에서 참모들과 상의한 적도 없는 '임성근 휴가 처리' 문제를 뜬금없이 정종범 부사령관에게 지시한 셈이 된다. 그에 앞선 이첩 보류 지시도, 임성근 휴가 지시도, 장관이 참모들과 토의하여 결심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듣고 온 것일 수 있다는 결론에 닿게 되는 것이다.
이종섭의 사라진 점심시간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024년 3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리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합동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회의실로 가기 위해 승강기에 탑승한 이종섭 대사에게 카메라가 집중되고 있다.
권우성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은 또 있다. 통상적으로 국방부장관은 청사 내 직원식당 A테이블에서 정책실장, 법무관리관 등 실장급 간부들과 겸상하여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허태근 실장은 이 날 장관과 같이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날 장관이 점심시간에 직원식당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오전까지만 해도 별말이 없던 장관이 대통령실 전화를 받고 나서 이첩 보류와 임성근 사단장 정상 출근을 지시한 뒤 점심시간 무렵 사라졌다가, 돌연 복귀하여 13시 30분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참모들과 회의를 열고 이첩 보류 지시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토의했다.
그러곤 뒤늦게 참석한 정종범 부사령관에게 뜬금없이 임성근 휴가 처리와 관련된 지침을 하달한 것이다. 게다가 회의가 끝난 뒤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이동 중이던 이 장관은 14시 47분에 박진희 군사보좌관 핸드폰으로 정종범 부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7월 31일 하루만 휴가처리하고 내일부터 정상 근무하는 걸로 정리'하라며 임성근 사단장 휴가와 관련한 지시를 또 하달했다.
이첩 보류도 이첩 보류지만, 임성근 사단장 휴가 처리 문제를 이종섭 장관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듣고 왔는지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장관이 일개 사단장 신변 정리를 위해 누구하고도 상의하지 않고 반복해서 내린 지시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이것이 바로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설'의 핵심 키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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