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덕 선생님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
류승연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사정이 딱한 학생을 만나는 교사가 권 선생님 한 명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권 선생님처럼 제자의 '졸업 이후의 삶'까지 개입해 직접 실천적 행동에 옮기는 교사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저에게 권 선생님은 매우 강한 인상으로 와닿았는데요. 권 선생님은 "부모님이 이렇게 낳아주셨는데 어떡해요"라며 물려받은 DNA에 공을 돌립니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권 선생님의 에너지는 놀랍기만 합니다. 현재 근무 중인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에 발령받은 후 권 선생님은 송파구청 홈페이지부터 싹 뒤졌다고 합니다. 송파구 안에 있는 장애인 관련 기관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파악한 다음엔 무작정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 기관에선 우리 애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 기관과 우리 학교 애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무작정 가서 둘러보고 상담하며 길을 뚫기 시작하는 것이죠.
"근처 복지관에 갔더니 취업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는 사회복지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를 붙잡고 우리 학생들이 사무보조 일을 많이 하는데 관련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사무보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했죠."
학교 안에서도 사무보조와 관련된 업무를 배우긴 하지만 익숙한 공간인 학교와 낯선 공간인 사회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를 벗어난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익힐 기회가 필요합니다. 해당 복지관은 실습하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프로그램 외에도 진짜 일거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에 파지가 나와도 곧바로 처리하지 않고 학생들을 위해 남겨두기 시작한 겁니다.
파지를 분쇄기에 넣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테이플러가 찍혀 있는 종이에선 심을 일일이 빼야 하고, 이물질이 묻은 것은 따로 분류해야 하며,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한 번에 많은 양의 종이를 쑤셔 넣어서도 안 됩니다. 반복 실습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복지관만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직업 훈련을 지역사회 안에서 직접 실습할 수 있도록 동네 카페도 뚫고 구청도 뚫습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권 선생님은 한 기관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요. 재학생 중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의 장기를 살려 취업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지역 내 관련 기관을 섭외해 놨다고 합니다. "내년에 우리 학생 보낼게요. 잘 부탁합니다."
학교와 사회 잇는 '완충지대' 필요성
권 선생님은 "나한테 온 학생들만이라도 학년이나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잘 연결해 주고 싶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맞는 일자리가 있는지 찾아다니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기존 방식대로 장애인고용공단 등을 이용한 공식적 구직 활동만을 할 경우 일자리가 한정적이거나, 학생 집에서 먼 곳에 취업하거나, 학생 개개인의 특성이 발현되기 힘든 곳에 취업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권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이 지역 안에서 취업할 수 있는 영역, 문을 넓혀 두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여러 기관을 연결해 담당자들과 소통 창구를 열어놓으면 그만큼 우리 학생들의 취업 범위가 넓어집니다. 기관에서 급하게 구인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럴 때도 소통 창구가 열려 있으면 신속하게 서로의 필요를 채울 수 있게 되죠."
부모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특수교사가 그래야만 할까요. 퇴근 후에도 장애 기관 관계자를 만나러 다니고 주말이면 학생을 직접 만나고 그래야 할까요. 아니요. 이런 일들이 특수교사 개인의 몫이 되어버리면 안 되겠죠. 그래서 필요한 게 시스템입니다. 권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사실은 정책과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시스템 구축을 위해 권 선생님은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사회로 나가는 큰 변화 앞에서 학생도, 특수교사도, 부모도, 사회구성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수교사의 역할은 학교 안에서 교육하고 취업 시켜주는 것이에요. 졸업 후 지원은 지역사회에서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졸업 후 자리를 잡기까지 완충지대가 없어요."
특수교사들은 제자들이 졸업하면 끝이라 생각하고, 사회복지사는 당사자가 보낸 학교생활 정보 등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부모들은 자녀 졸업 후엔 누구와 얘기를 하고 어디에 부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더라는 겁니다. "완충지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과 사람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인 기관과 인력
"선생님이 말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특수학교 전공과가 맡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전공과란 특수학교에 개설된 일종의 직업반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면접(실기)을 거쳐 입학할 수 있습니다. 특수학교 학생만이 아닌 지역 내 특수학급 졸업생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전공과는 학교 안에 개설돼 있잖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전공과가 실질적인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선 학교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할 기관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발달장애인 훈련센터'도 있고 특수교육지원센터에도 진로협의체가 있긴 하지만 형식적인 측면이 크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실질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기관이 정해지고 인력도 따로 배치돼야 합니다"
기관 협력체계 구축도 중요한 일입니다. 권 선생님은 지역사회에 진로 기관 협력체가 있어서 사회복지사와 기관 관계자, 특수교사와 학부모와 당사자가 다 함께 모여 "이 학생은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 지역사회 안에서 이런 업무가 맞을 것 같다는 협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기관과 인력이 정해져야 해당 인력이 지역 안의 협력체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중심이 되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학교를 졸업했다고 그 순간부터 특수교사가 학생의 삶을 부모 몫으로 넘겨버리면 너무 많이 힘들어집니다."
권 선생님은 졸업한 제자들은 물론 부모들과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냅니다. 졸업 전 취업시켰다고 끝이 아니라 사회인이 된 제자들의 이직까지도 힘을 씁니다.
"저는 그렇게 얘기해요. 교사와 부모와 학생은 한 배를 탔다고요. 부모님들에게 중간에 가다가 내리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리시라고 얘기합니다. 아, 이 말도 해요. 제가 죽을 때까지만 연락하시라고요(웃음)."
나이 들어도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