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매일경제> 4면 기사 '수조원 전기료에 짓눌린 반도체社 … 송전망 비용까지 떠안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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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건설 계획이 수립된 고덕에서 서안성까지의 송전선로는 10년 만인 2023년에야 준공됐습니다. 이 송전선로는 경기도 안성시, 용인시, 평택시를 지나는 23.5km 길이의 송전망인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위해 설치한 겁니다. 그 때문에 3900억 원의 공사비 전액을 삼성전자가 부담했습니다. 건설 과정에서 안성시민의 반대로 일부 구간은 지중화하기도 했습니다.
용인 클러스터를 위한 송전선로 예상 구간인 태안에서 용인까지는 단순 계산만으로도 고덕-서안성 구간의 5배 가까운 거리이며 그만큼 이해관계자와 협의해야 할 지자체가 더 많습니다. 23.5km 송전망 준공에 10년 걸렸는데, 그보다 더 긴 태안-용인 구간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일정에 맞춰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주민을 설득하고 지자체와 조정을 거치는 일이 가능할까요?
기사에 따르면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전 측은 용인 반도체 단지까지 연결하는 전용 송전망을 구축하게 되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수혜를 보는 기업이 건설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팹을 위한 전용 송전망이므로 삼성전자가 부담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만약 한전이 그 비용을 부담한다면 삼성전자는 수조 원대의 혜택을 보고, 한전이 떠안은 비용은 전기료에 더해져 국민들 모두가 골고루 나눠 부담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국민에게서 돈을 걷어 삼성전자에 갖다 바치는 일이 되는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고덕에서 서안성까지의 송전망을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삼성전자가 모두 부담했고, 앞으로도 이 원칙이 바뀔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기사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삼성전자 등은 용인 반도체 단지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최근 결성해 1~2주 내로 첫 협의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전 이 말이 삼성전자가 부담해야 마땅한 송전망 구축 비용을 정부가 부담할 방안 마련을 위해 협의에 들어간다는 걸로 들립니다.
대통령님은 이미 지난 5월 23일,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전기, 용수, 도로 같은 인프라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책임지고 빠른 속도로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좋아 정부와 공공부문이 책임진다는 거지, 실제로는 국민의 세금을 특정 재벌을 위해 쓰겠다는 것 아닌가요?
전력 문제 하나만으로도 용인은 반도체 클러스터가 될 수 없다
삼성전자가 송전망 구축을 위한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태안에서 용인까지 110km에 이르는 송전망이 별도로 세워질 텐데, 일부는 땅속에 묻히고 또 일부는 산이나 들에 철탑을 세워 전선을 깔겠지요. 마을이나 논밭을 가로지르는 송전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팹 건설을 위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크고 작은 불편을 겪게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송전선이 길수록 버려지는 손실 전력 역시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통령님에게 제안 하나 하려고 합니다. 4조 원 이상의 비용, 송전망이 설치되는 110km 구간에 사는 수많은 주민의 불편과 갈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력을 사용하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용인이 아니라 에너지원이 있는 지방으로 옮기는 겁니다.

▲지역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전북과 충남은 경기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발전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
전기를 끌어오겠다는 서남해권은 <매일경제>의 표현대로라면 풍력·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가 남아돌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서남해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면 110km나 되는 송전망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 수도권 과밀 현상 해결, 지역 균형 발전이 동시에 해결됩니다.
전기 지역별차등요금제에 대해 알고 있나요? 발전소에서 먼 곳의 전기요금을 가까운 곳보다 비싸게 책정하는 제도입니다. 송전망을 다 깔아도 용인 클러스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전기요금을 내야 합니다. 클러스터를 에너지원이 있는 지방으로 옮기면 향후 팹 운영을 위한 전기요금도 아낄 수 있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에 조성하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반도체 설계는 미국에서, 웨이퍼 제조는 대만에서 칩 조립은 말레이시아에서 하는 세상입니다. 반도체 팹이 지방에 있다고 해서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까지 모두 지방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팹이 있는 곳에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현대자동차는 울산에 있고, 포스코는 포항에 있고, GS칼텍스와 LG화학은 여수에 있습니다. 이제껏 그 회사들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힘들어 회사 운영을 못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반도체가 자동차나 화학에 비해 딱히 더 우수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 산업인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어느 지역에 있어도 인재들이 찾기 마련입니다.
▲RE100에 가입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객사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는 이미 RE100을 달성했습니다.
RE100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태생적으로 전력이 문제입니다. 세금을 쏟아부어 LNG 발전소를 짓거나, 동해안이든, 서해안이든 송전망을 깔아서 전기를 가져와서 공급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빨라도 용인 클러스터에서 반도체가 생산될 때가 대략 2030년 정도가 될 텐데, 그때는 RE100을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고객사들의 약속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생산되지 않는 제품은 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LNG나 원전으로 일단 시작해 놓고, 그때 돼서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다시 갖추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때는 임기가 이미 끝났으니 대통령님이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수급 문제 때문에라도 완전히 잘못된 선택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용인 반도체 단지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아니라 RE100 달성이 가능한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을 위한 태스크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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