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7일 미국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의 '스캔들 룸'에 전시된 1970년대 유물. 이 방은 1972년 6월 17일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침입했을 때 망루로 사용되었다.
EPA/연합뉴스
상원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와 특별 검사는, 버터필드 증언 10일 후인 7월 23일, 대통령실에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닉슨은 대통령 특권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는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라는 점과, 테이프에 국가 안보와 외교 문제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하면 대통령직 수행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러나 특별검사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석 달이 지나도록 백악관이 응하지 않자, 10월 19일에는 법원에 닉슨 대통령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국면에서 닉슨 대통령의 세 번째 실수가 발생했다.
특별검사의 담대한 행보에 화가 난 닉슨 대통령은 다음 날인 10월 20일, 토요일 저녁, 특별검사를 해고하라고 법무장관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법무장관이 이를 거부하며 사임했고, 법무차관도 역시 닉슨의 지시를 거역하며 사임했다. 결국 신임 법무장관이 특별검사를 해고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특별검사 해고 이후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대통령이 권력 남용과 진실 은폐를 시도하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닉슨은 할 수 없이 타협안으로 테이프의 일부 편집본을 제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는 신뢰성 문제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시지탄이었다. 그 사이 1973년 11월에 새로 임명된 특별 검사는 테이프 제출을 압박하기 위해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는 "미국 대 닉슨" 사건으로 불리며 법적 투쟁이 전개됐다.
결국 1974년 7월 24일, 연방대법원은 닉슨이 녹음 테이프를 제출해야 한다는 만장일치 평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대통령 특권이 사법부의 적법한 절차에 우선할 수 없으며, 중요 증거의 제출이 요구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또한 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판결로 이 비밀테이프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후 2년 2개월째, 버터필드의 의회 청문회 증언 이후 13개월 만의 일이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테이프가 세상에 공개된 지 단 3일 만에 전국 방송을 통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고, 다음 날 공식 사임했다.
이후, 공화당은 197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하원에서 48석, 상원에서 4석을 잃었으며, 4개의 주지사 자리도 민주당에게 빼앗겼다. 하원에서 민주당은 291석을 확보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3분의 2 이상의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상원에서도 61석을 확보해 압도적 다수당 지위를 차지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신뢰 상실이 이러한 결과의 주요 원인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