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팹에서 일하던 황유미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그동안 숨겨지고 몰랐던 수많은 사망 사건들이 드러났습니다. 사진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11주기 행사가 2018년 3월 6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앞에서 열리는 모습.
박정훈
그래도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소부장 회사들이 많으니, 양질의 일자리는 맞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반도체 특별과외 첫 번째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와 같이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은 유독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아주 위험한 곳인 데다, 1년 365일 잠시도 운영을 멈출 수 없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힘든 일터입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10년간의 역학조사 이후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 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경우 백혈병에 걸릴 위험성은 1.55배 높았고, 이 중 웨이퍼 팹 안에서 반도체 칩을 직접 다루는 20~24살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2.74배로 더 높았습니다. 백혈병뿐만 아니라 위암이나 유방암 그리고 신장암 그리고 일부 희귀암도 발생 위험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유발된 질병은 보고서 안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 이야기는 영화로도 소개됐으니 대통령님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 겁니다. 오늘은 또 다른 황유미씨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지난 3월 22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7~10년 일했던 세 명의 반도체 여성노동자의 건강손상자녀에 대해 산재 인정을 통보했습니다. 엄마가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바람에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겁니다.
세 명 모두 현장에서 반도체를 직접 만들던 작업자였습니다. 김혜주(이하 모두 가명)님은 임신 상태에서 열심히 현상액을 부었고, 김은숙님은 열심히 에폭시를 가열하였고, 김성화님은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웨이퍼를 날랐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그들의 자녀는 신장이 없거나 대장이 움직이지 않는 등의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이번 산재 승인은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의 자녀가 앓는 선천성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첫 사례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자녀를 두고 원인을 몰라 혼자 고민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월급이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건강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 필요한 것
대통령님이 반도체가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 반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들로 반도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도체가 곧 민생이기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명백히 틀린 말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도체가 곧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게 아닐 뿐더러, 거액을 투자한 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여타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도 적습니다. 13조 원의 예산으로 전국민에게 25만 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주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예산 부족과 물가 상승을 이유로 거부하면서, 대기업에 지원하겠다는 26조 원은 어떻게 그리 쉽게 마련이 되는지요?
끝으로 정부 연구기관의 보고서 하나를 더 보죠. 지난 5월 16일, KDI는 2024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내놓았습니다. KDI의 요약은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