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9월 30일 체결된 미국과 소련 간의 핵전쟁 발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에 관한 협정
미 국무부
"아무리 정교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기술적인 오작동이나 인간의 실책,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행동이 핵 재앙이나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체제 경쟁과 군비경쟁에 여념이 없던 미국과 소련이 1971년 우발적 핵전쟁을 막기 위해 체결한 협정 서문에 담긴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핵전쟁을 억제하겠다'며 취해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아래 조선)의 행보가 오히려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나누고자 하는 데 있다. 조선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취하는 언행이 과비유환은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물론 이는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 혹은 한미동맹의 군사적 준비태세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정책결정자들이 이 글을 접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기를 희망하면서 몇 마디 적는다.
KAL기 피격 사건과 하와이 소동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이후 의도적인 핵무기 사용은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핵 시대가 개막된 이후 핵전쟁의 문을 두드린 의도치 않은 우발적인 사고들은 많이 있었다. 조선은 이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다.
영국의 BBC는 2020년 8월 10일 자 분석 기사에서 핵무기의 등장 이후 우발적인 핵전쟁이 벌어질 뻔한 사례가 최소한 22차례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월출이나 햇빛과 같은 자연 현상, 날아다니는 새떼를 핵 공격으로 오인하기도 했고, 인공위성 발사 정보를 제대로 접수하지 못해 핵 가방을 가동할 뻔한 적도 있었다. 조선도 잘 알고 있을 법한 사고도 있다.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가 종말을 고하고 신냉전으로 돌입했던 1983년. 그해 9월 1일에 미국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 747 여객기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추락해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소련의 방공 부대가 한국 여객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한 것에서 비롯된 참극이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미소 간의 신경전이 절정에 달하고 있던 9월 26일, 소련의 조기 경보 위성은 미국이 5기의 지상 발사 미사일을 소련을 향해 발사한 것으로 탐지했다. 이를 접한 소련 장교에게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시간은 불과 몇 분밖에 없었다. 진짜 미사일 공격이라고 상부에 보고하면 소련도 즉각적인 핵 보복 태세로 진입할 터였다.
그런데 이 장교는 미국이 소련에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경우 5개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5기의 핵미사일로는 소련의 보복 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에 근거해 그는 상부에 "잘못된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이로써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악의 핵전쟁 위험이 지나갔다. 그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햇빛이 구름에 반사된 것을 소련 위성이 미국의 미사일 발사로 착각한 것이다.
조선과 미국 사이에 신경전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초에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었다. 그해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직무실 책상에 "핵 단추가 있다"고 주장하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책상 위에는 "훨씬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고 심지어 작동도 한다"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현지 시간으로 1월 13일 오전 8시 7분. 주민과 관광객들의 휴대폰에 "탄도미사일이 하와이를 위협하고 있다. 즉각 대피하라. 이건 훈련이 아니다"라는 긴급 문자가 전송됐다. 한 달여 전에 하와이 주민들은 조선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대피 훈련을 받았던 터였다. 그래서 이번엔 실제로 조선의 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잘못된 경보였다. 작업 교대하던 하와이 주정부 비상관리국 직원이 '비상 버튼'을 잘못 누른 것이다.
'화산'과 '핵방아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