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그해 11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원장을 상임위 내에서 호선하던 방식을 본회의에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조항과 더불어 국회 예비금을 국회의장이 관리하도록 하는 조항으로 인해 논란이 됐다. 이승만 정권이 예비금 문제와 관련해 내놓은 거부 사유는 삼권분립 저촉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공식적인 재의요구서에 예비금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거부 사유 중 하나는 그것이었다. 12월 6일 자 <조선일보>는 "정부에서는 국회 예비비를 의장이 관리함은 헌법 및 재정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말로 이승만 정권의 실질적 거부 사유를 보도했다.
법제처가 발간한 2008년 3월호 <법제>에 실린 김승열 법제처 법제심의관의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에 관한 고찰'은 이승만 정부가 "예비금의 관리는 원래 순전한 재무행정이므로 정부의 권한에 속하여야 할 것은 당연"하다며 "그 관리를 국회의장이 하도록 하는 것은 3권 분립의 근본 정신에 위반"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설명한다.
입법부라고 해서 오로지 입법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입법부 내의 사무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인사나 재정 같은 행정사무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개시하기 전 국회가 탄핵소추를 한 일이 있듯이, 국회는 사법 기능도 수행한다.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는 현행 헌법 제64조 제2항은 국회가 예외적이나마 사법적 권한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법률은 의원이 아닌 행정부 공무원들의 손에서 실질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심판제도의 존재로도 증명되듯이 행정부는 사법 기능도 수행한다. 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법원도 사법부에 관한 법률의 제·개정에 개입하고, 법원 직원과 법관에 대한 인사행정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삼권분립 원리를 내세워 '국회는 오로지 입법만 하고 법원은 오로지 재판만 해야 한다'며 입법부와 사법부를 제약하는 것은 행정부 독재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유도 아니고 삼권분립을 이유로 하는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억지 거부가 되기 쉽다.
국회 예비비를 국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1952년 당시 국회의원들의 판단 역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예산 집행은 행정부 소관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국회 예산집행의 세부적인 데까지 개입하려 했다. 그런 논리를 앞세워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했던 것이다.
요즘 많이 보도되고 있듯이 이승만은 12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45건의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임기 2년이 되는 시점에서 벌써 10건의 법률을 거부했다. 행여라도 그에게 12년 임기가 주어질 경우, 이 속도로 가면 60건 정도가 된다.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희생된 채 상병과 관련된 특검법까지 거부한 데서도 증명되듯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인정사정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비정하고 가혹하게 행사한다면, 임기 12년이 아니라 임기 5년 내에도 얼마든지 이승만의 '거부왕' 타이틀을 빼앗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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