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주호영 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금개혁안 여야 합의가 최종 불발됐다고 설명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유성호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연금 문제를 다음 국회로 넘겼다. 취임 2년 역대 최저 지지율을 보이는 현 정부에 굳이 작은 비판을 얹을 생각은 없다. 필자가 학부생이었던 1990년대 말 대학의 재정학 수업에서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언급되었을 만큼 지속가능성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적되었던 문제였고, 지금까지 여러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그 시절마다 해결하기 벅찬 다른 문제가 충분히 많았을 테고, 그래서 연금 문제의 우선순위는 높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은 운이 좋지 않은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선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집권 초기 연금, 노동, 교육의 3대 개혁에 방점을 찍고 자신의 유산으로 남기려고 했던 것치고는 그 경과나 지금까지의 성과는 인상적이지 않다.
국민연금 시민대표단 공론조사 결과 '소득보장론(보험료율 9→13%, 소득대체율 40→50%)'에 대한 지지가 '재정안정론(보험료율만 9→12%)'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소식이 지난달 발표된 이후, 여야는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으며 결국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정치권은 공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옳았다고 믿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었던 반대는 천하람 당선인이 페이스북에 썼다는 다음 글이었다. "제 아들이 2016년생이다. 월급의 35%가 넘는 돈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고 추가로 건강보험료, 소득세 내면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것인가." 나도 2015년생 자식이 있다. 그것도 쌍둥이!
빈 종이상자를 카트에 꾹꾹 눌러 담고 위태하게 차도를 지나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악의 노인빈곤율을 체감하면서도, 다음 세대에 그러한 연금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수치를 어떻게 바꾸든 현재의 연금구조는 지속할 수 있지 않으며, 결국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천하람 당선인이 인용한 수치는 현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나온 숫자이고, 현 제도하에서는 '소득보장론'이나 '재정안정론' 둘 다 고갈 시점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국민연금에 대한 견해와 무관하게, 지금의 모수개혁은 시작에 불과하며, 결국 구조개혁이 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국민연금을 없애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의 구조개혁이든 적정한 소득대체율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과 함께 국고 투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국고 투입을 위해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재원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미래세대에게 다른 색깔의 청구서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고 투입을 위한 별도의 재원 마련은 국민연금 지속가능성의 필요조건이다.
탄소 수입과 국민연금 재원
그래서 탄소 수입을 국민연금 재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높은 탄소가격이 필요하지만 현재 세대에게 부담이 되고,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데 국민연금이 필요하지만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된다. 그래서 두 제도를 별도로 다루게 되면 정치적 반대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탄소 수입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면 두 제도의 수용성을 같이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높은 탄소가격 도입의 편익은 미래 세대가 누리게 되며, 국민연금의 편익은 노년의 현재 세대가 누리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세대에게는 노후를 위한 저축이, 미래 세대에게는 덜 나빠진 기후와 가벼워진 연금 보험료 청구서가 된다.
다만, 현재의 탄소 수입으로는 국민연금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3년 배출권 판매수익은 매년 3000억 원 수준으로 1000조 원 규모인 국민연금 적립금에 비교하면 크지 않다. 더군다나 현재 배출권 판매수익은 현재 2.4조 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 재원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기후변화의 중대성을 생각하면 그 규모는 앞으로 더 커져야 한다.
따라서 탄소 수입이 기후대응기금과 국민연금 모두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탄소가격의 수준을 지금보다 현저히 높여야 하고, 대상 범위도 훨씬 넓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높은 탄소가격은 우리의 지갑을 한동안 가볍게 하겠지만, 미래의 국민연금 부담을 낮춰줄 수 있다는 세대 간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면 그 과제를 이행하는 과정은 덜 힘들 수 있다.
우리가 아는 한, 탄소가격과 국민연금은 각각 기후변화,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이다. 향후 10년이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며 탄소가격제는 중요한 동인 중 하나가 될 것이지만 현행 배출권거래제로는 불충분하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그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흔들거리고 있다. 현 정부는 추진 동력을 잃은 듯 보인다. 이 두 가지 골치 아픈 세대 간 문제를 풀어낼 주체는 국회밖에 없다. 새로 출범하는 제22대 국회의 선전을 바란다.
필자 소개: 수학과 경제학을 우리나라,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였고 지금은 국립부경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연구, 강의합니다. 야학교사, 언더웨어 모델, 해군장교, 한국은행, 국책연구원 등의 경험이 있습니다(이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닙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분야를 주로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 한국기후변화학회에서 주는 신진연구자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우리를 기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지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고, 생각이 충분히 익으면 자본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기후 위기 극복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을 쓸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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