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예정된 가운데,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권우성
국가보안법 연루자들이 실상은 별 혐의점이 없었다는 점은 위반 혐의자들이 입수했다는 '국가기밀'의 실체에서도 드러난다. 위 보고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루는 대목에서 "이들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다섯째, 이들이 수집·탐지·누설했다는 국가기밀의 내용은 관광여행 중 여행 안내원으로부터 들은 '경부고속도로는 전쟁 시 군용도로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성우 씨), 친구 아들을 면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육군행정학교 출입 절차(김윤수 씨),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합법 출판물(황대권 씨), 길을 걸어가다 보게 된 학생시위 광경(김성만 씨)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알 수 있는 '공지의 사실'인 것이다."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출판물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이 수사당국에 의해 '국가기밀'로 둔갑되는 기막힌 상황을 목도한 황대권씨는 1985년 6월 4일 새벽 5시에 체포됐다. 이날 그는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생후 1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귀국한 다음날이었다. 새벽에 대문을 두드리는 남자들에게 잠옷 차림으로 체포된 그는 손을 뒤로 한 채 수갑에 묶이고 머리를 차 바닥에 박힌 채 연행됐다.
이 사건은 유명한 간첩조작 사건인 '구미 유학생 간첩 사건' 또는 '구미 유학생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 미국 유학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학생들이 귀국 뒤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최장 65일간 서울 남산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정원)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15명이 사형·무기징역 등의 형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독재정권이 국가보안법을 운용한 것이 북한 때문인지 민주화세력 때문인지가 여실히 밝혀진다. 위 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1985년 6월을 전후해서 연행되어 8월 5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던 구미 유학생 사건에 대한 발표는 각 대학의 2학기 개학 직후인 9월 9일에 이루어졌으며, 이 사건의 경우 1심·2심·3심 재판 결과가 모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상고심은 1986년 9월 20일경쯤 끝났음에도 아시안게임이 끝나 다시 정부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11월에 그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북한의 대남 활동 사이클에 맞춰 국가보안법 사건을 발표하지 않고, 민주화세력의 동향에 맞춰 그렇게 했다. 국가보안법이 주로 무엇을 겨냥한 악법인지가 이런 데서도 증명된다.
구미 유학생 사건 피해자 3명의 재심 공판이 열린 2022년 11월 22일, 검찰은 이들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이 변호인처럼 요청했던 것이다. 12월 2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예를 갖췄다. 재심 재판의 검사와 재판부가 보여준 이런 광경은 이 유명한 국가보안법 사건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낸다. (관련기사:
37년의 기다림...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재심 무죄 https://omn.kr/223ft)
국가보안법은 북한이 아닌 민주화세력을 주로 겨냥했다. 국가가 아닌 정권을 보안하는 법으로 악용됐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실의 방증이 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심사를 거쳐 혜택을 볼 수 있으므로 민주유공자법을 반대한다는 국가보훈부의 주장은 민주화운동과 국가보안법 간에 존재하는 고도의 친밀성을 외면하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