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맥주(자료사진)
연합뉴스
빛이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잘못된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편의점에 진출했던 수제 맥주들이 깜깜한 터널로 들어섰다. 적자임에도 코스닥 상장을 허락받았던 제주맥주는 자본 잠식 상태다. 3000원이었던 주가는 1000원 밑으로 내려갔다.
3년 전 280억 원이었던 매출은 재작년에는 230억 원, 작년에는 220억 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 영업 적자 폭은 3년 전 70억 원, 재작년 110억 원, 작년 110억 원으로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상태다. 더구나 제주맥주는 유니콘 상장을 했기 때문에 수익을 내지 못하면 내년에 상장 철폐가 된다. 결국 올해 최대주주 엠비에이치홀딩스와 대표이사가 보유한 지분을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전량 매각했다.
한때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세븐브로이도 적자 전환했다. 곰표밀맥주를 제주 맥주에 빼앗기면서 동력을 잃었다. 2021년 400억 원이었던 매출은 작년 120억 원으로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61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코스닥 상장에 빨간 불이 켜지자 리스크가 높은 코넥스에 상장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10년 전 수제 맥주 리더였던 카브루와 플래티넘도 상태가 안 좋기는 매한가지다. 공장을 매각하며 반전을 노린 카브루의 매출은 60억 원으로 제자리다. 그나마 당기순손실이 23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줄었다는 게 희소식이다. 예산에 신축 양조장을 세운 플래티넘은 32억 원 매출에 7.7억 원 당기순손실을 보고 있다.
수제 맥주 회사들의 미래가 암울한 이유는 답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채널의 한계로 매출 확장이 어렵고 비용 구조가 높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수제 맥주는 라거, 페일 에일, 스타우트, 인디아 페일 에일(IPA)처럼 다양한 라인업을 갖고 있다. 공정이 수시로 바뀌고 다양한 맥아와 홉이 사용된다. 생산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라거 맥주 한 종류만 생산하며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 대기업과 단가 경쟁이 불가능하다.
비용이 높으면 브랜드 가치를 높여 판매 가격을 높이거나 매출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편의점과 마트라는 대중 채널로 들어서면 가격에 저항을 받는다. 프리미엄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으려 했던 전략의 패착이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너무 쉬운 길을 가려고 했다.
거의 모든 수제 맥주 회사들이 맥주뿐만 아니라 막걸리, 하이볼 등 다른 술을 출시하고 있다. 맥주라는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 10년 동안 펼쳐졌던 수제 맥주 사가의 종말이다. 한 시대가 이렇게 끝났다.
그럼에도 남은 맥주 문화

▲브루펍 맥주들
윤한샘
2024년 경제 상황으로 볼 때, 맥주 시장의 성장은 요원하다. 고물가, 고환율로 소비가 위축됐고 내수가 위험하다. 큰 기업부터 작은 기업까지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고 있다. 대기업 맥주는 외연 확장보다 한 템포 쉬어갈 것이다. 오비맥주는 편의점 위탁생산 맥주를 만들던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KCB)를 없앴다. 구스아일랜드 브루펍에 대한 마케팅 예산도 줄였다. 하이트진로와 롯데 또한 공격적 마케팅 대신 팝업 스토어나 캠페인 같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수입 맥주 시장은 각자 입은 상처 치료에 주력할 듯하다. 일본 맥주들은 노재팬 운동으로 무너졌던 조직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유럽 맥주들은 중동 전쟁으로 또다시 긴장하고 있다. 치솟는 환율도 걱정거리다. 내실을 다지며 차후 기회를 엿볼 것이다. 이는 아직 피를 흘리고 있는 칭따오도 마찬가지다.
제주 맥주를 비롯해 세븐브로이, 카브루 등 시장을 주도했던 회사들은 이제 리더십을 잃었다. 맥주 정체성을 버린 순간 문화를 이끌 능력도 사라졌다. 수제 맥주 회사들은 결정을 해야 한다. 대중 맥주의 길과 프리미엄의 길, 둘 다 잡을 수 없다. 특단의 대책은 없다. 결국 버티는 회사가 남아있는 '수제 맥주' 카테고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라거 일변도였던 시장에 문화는 남았다.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다채로운 맥주를 즐기고 있다. IPA, 포터, 사우어 에일처럼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용어들도 종종 눈에 띈다. 펍에서 IPA를 마시는 중년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치킨에 생맥주만 마셨던 문화를 벗어나 취향에 따라 맥주를 즐기는 시대가 도래한 건 확실하다.
크래프트 맥주들이 프리미엄 시장에 안착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은 대기업 맥주들이 주도하겠지만 짧게는 3년 안에 한국 크래프트 맥주가 문화 리더십을 잡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은 대기업 맥주를 위시한 대중 시장부터 크래프트 맥주가 중심인 프리미엄 시장까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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