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택시노동자 방영환 열사 노동시민사회장' 영결식이 지난 2월 2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고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있다.
이정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방영환의 분신과 사업주의 괴롭힘이 업무상 상당관계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방영환의 사망 직전 심리기제가 '터널시야'로 판단된다고 했습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터널 시야는 '어두운 터널을 자동차로 운전할 때 터널의 출구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어두워지는 시각 현상'을 뜻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나 절망을 느낄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저는 밀려오는 죄책감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지만, 방영환이 달리고 있던 외로운 터널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혁명가 홍세화의 삶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남민전 전사 홍세화는 정치 난민이 되었고,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귀국 후에도 아웃사이더로 살았습니다. 함께 걷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났지만, 홍세화는 묵묵히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마치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가 떠나고 홍세화와의 크고 작은 일화를 언급하며 추모하는 말과 글을 봅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스럽습니다. 인간 홍세화는 날카롭게 벼려진 홍세화의 글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사람도 너르게 품으려고 했던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조국의 입시 비리에 분노했고, 노동조합원들과 진보좌파들의 코인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자에 절망했습니다.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과 독선적인 윤석열 정권을 모두 비판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는 못할 겁니다. 정훈 기자님이 지난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맥락과 역사가 사라진 시대니깐요. 사람들은 그저 오래된 좌파 운동가의 양비론내지 사회비평 정도로 읽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작가 홍세화의 글과 문장을 따르는 사람은 많이 보이지만 혁명가 홍세화의 정치적 행보를 따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홍세화는 비감을 느낀 듯, 마지막 칼럼에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라고 했습니다.
홍세화가 죽은 후 그를 기리는 수많은 추모들도 다르지 않아 '장송곡'처럼 들려 서글퍼집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이루려고 한 진보좌파 정치는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하거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아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홍세화에게 내지 못한 요금을 내려고 합니다

▲살아생전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의 모습 (2022.5.26.)
유성호
비겁하게도, 홍세화 선생님의 택시에 동승하지 못했습니다. 주제도 안 될 뿐더러, 도대체 어디로 향할지 비용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홍세화의 마지막 당적은 녹색당과 노동당이었습니다.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을 겁니다. 내가 힘을 보태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녹색과 노동의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무임승차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밀린 후불 요금을 내고자 녹색당과 노동당의 후원당원이 되었습니다.
노동당 홈페이지에는 홍세화가 노동당에 후원을 요청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원외소수정당 노동당이지만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친 한국의 정당구조에 끝내 투항하지 않고 오히려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정치적 결사체로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 이유는 충분하고 뚜렷합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서 '아직도 노동당에 남아 있냐?'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죽는 날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답하는 것도 그 때문이며,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여러분에게 노동당 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국화꽃이 아니라 당원가입서가, 독자적인 진보좌파정당의 꿈이 그의 영전에 놓이길 소망해봅니다. 그는 터널 끝에 보이는 희미한 꿈을 향해 외롭게 걸었습니다. 그가 걸었던 길을 함께 걷자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과거를 쫓는 것만으로는, 내가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자족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터널 속을 걷는 게 아니라 터널을 부수어 홍세화가 추구했던 평등을 향한 꿈이 모두의 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산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과 '노동'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홍세화와 방영환이 만나는 곳
정훈 기자님이 지난 편지에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투쟁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평등한 공동체를 향한 나침판을 들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볼 생각입니다. 노동운동을 하는 저에게도,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기자님에게도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가 거리의 택시운전사 방영환을 만나러 가는 길만큼은 봄날의 햇살처럼 밝게 빛나길 빌어봅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가 우리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진보좌파정치의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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