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 EV전용공장 기공식에서 기념 연설을 하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대차·기아
대기업 정규직 생산직 채용은 이제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현대자동차는 2023년에 400명 생산직 공채를 진행했고, 올해인 2024년에는 400명을 더 뽑는다. 10년 만이다.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300:1 경쟁률로 높은 연봉과 정년을 보장받는 '킹산직' 채용이라며 주목했다.
평균 연봉 1억 2000만 원인 회사의 생산직을 뽑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2025년부터 생산직 공채를 정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은 회사 측에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국가 정책에 발맞춰 공채를 진행한 '정책 T/O'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시점에 기존 현대차 조합원들은 매년 수천 명씩 정년퇴직하고 있다. 같은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등의 채용 규모도 현대자동차와 비슷한 흐름으로 정년퇴직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어차피 어느 대공장이든 정규직 생산직 공채는 드물다고들 한다.
만약 사내 하청만이 문제라면, 한 편에서 현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십수년간 전개했듯이 원청의 지휘가 작동하는지를 잘 포착해서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하거나, 다른 한 편에서 정부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원청 정규직과 하청 본공(상용공)간의 임금을 매년 측정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주거비나 생활비, 임금을 다양한 형태로 보조하거나, 조국혁신당이 공약으로 내세웠듯 원청 정규직들이 양보(잡 셰어링)를 할 수 있게 원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제어하여 그만큼을 하청 노동자들에게 주는 방법(사회연대임금)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상이다. 자동화가 많이 전개된 제조업에서는 생산직에 대한 수요 자체가 극도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퇴직 인원만큼을 사내하청에 떠넘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냥 줄이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도 '테슬라 기가팩토리'만큼만 인원을 써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말이 업계를 분석하는 사람들의 전언이다.
'생산성 동맹' 와해되고 '적대적 담합'만 남아
대체 왜 여기까지 왔는가? 가장 큰 원인은 '적대적 노사관계와 제조업의 생산방식 결정'에 있다.
1987년 이후 현대자동차는 두 가지 생산방식을 견주고 있었다. 한 편에서는 노동자들의 숙련을 극대화시키면서 자동화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독일과 일본이 채택했던 방식을 내재화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노동자들의 숙련을 활용하기보다는 CNC(컴퓨터 수치제어 선반)로 대표되는 자동화와 정보화, 그리고 사외 협력업체를 활용한 모듈화를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1998년 정리해고 사태로 노동자들과의 적대적 관계가 형성된 이후 현대자동차는 한동안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를 벤치마킹해 아산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창의적인 작업방식을 활용한 숙련을 높이려던 시도를 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사측은 노사관계의 파행으로 인한 품질, 비용, 납기(QCD)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숙련' 대신 대졸 이상 엔지니어들의 '생산기술'에 의존하는 생산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모든 공정을 완성차 공장에서 수행하기보다는 현대모비스를 매개로 다단계 하청을 줘서 모듈로 만들어 오면 최소로 조립할 수 있게 축소했다.
엔지니어들과 협업해 엔진을 개발하고, 과거 '포니의 신화'를 공동창출했던 생산직들의 숙련과 기술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보하게 됐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교육훈련을 통한 역량향상보다 '리더십 교육'이나 '조직문화 교육'을 통해서, 그저 '싸우지 않을 조합원'으로 순치시키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됐다.
노동자의 작업장에 대한 기술적 통제 수준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즉 자주관리를 하기 어렵게 됐다. 노동조합은 작업장의 생산속도를 회사와 조율했지만,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더 낮은 임금의 나쁜 처우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쓰는 것은 묵인했다. 노사관계에서의 '생산성 동맹'은 와해되고 '적대적 담합'만 남게 된 셈이다.
그 사이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임금 상승과 조합원 간 균등한 임금 배분을 달성했지만, '조합원 재생산' 즉 신규 채용의 활로를 막아버린 결정에 동조한 셈이 되어버렸다.
일시적 만족은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인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또한 조합원들의 임금이 상승하는 동안 그 임금 상승분은 원청의 '원가절감'(CR: Cost Reduction) 명목으로 수직적 관리를 받는 부품하청기업들에 전가됐다. 원하청의 임금 격차와 원청의 노사관계를 별도로 분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이 현대자동차에 자리잡히는 동안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다른 제조기업들은 현대자동차의 자동화를 벤치마킹하여 자동화를 극대화시켰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율을 보유한 제조업 국가가 됐다.
이러한 자동화, 정보화, 모듈화를 달성한 핵심적인 주체는 바로 대졸 이상 '엔지니어'들이다. 어쩌면 땀 흘려 일한 생산직 조합원 아빠들의 소망대로 자녀들을 회사의 등록금 제도를 통해 대학에 보냈는데, 아들들은 공과대학을 나와 생산직 일자리의 필요성 자체를 줄이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엔지니어들의 근무지는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 설명할 공간 분업 때문이다. 울산의 대기업 사업장 본사 소재지가 서울에 있어 수출로 발생하는 소득이 서울로 이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숙련을 배제한 제조업의 혁신과 고도화 결과로 제조업의 고부가가치 일자리 역시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게 된 셈이다.
절실한 정치 리더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5일 오전 울산 동구 전하2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가 역할을 해야 한다. '울산 문제'에 대해 정치는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울산 문제는 제조업의 구조변동과 노동시장 변화, 지역 불균형과 저성장 등을 포괄하는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 문제이기 때문에, 울산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며, 정치 리더십이 절실하다.
앞서 언급한 사회연대임금제는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생산직 노동자로 입직하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빠르게 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효과적일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으며, 대안적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다.
정치 리더십이 마주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선택은 지역사회로부터의 거버넌스를 통해 노동자들의 숙련을 높이고 이에 보상하는 방향(예: 직무급제)으로 '생산성 동맹'을 재건할 것인가, 아니면 제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아진 엔지니어들의 고용을 늘리기 위한 '엔지니어 유치에 기반을 둔 제조업 고도화'를 끌고 갈 것인가에 있다. 물론 그 중간에 수많은 선택지가 있을 것이기에, 정치적이거나 정책적인 고민은 조합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의 문제를 던진다.
그럼에도 여기서 핵심은 '울산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이다. 해법이야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을지라도 이 문제를 대면하지 않고선 한국 사회의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22대 국회가 관심과 지혜를 모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울산 문제'를 극복해야 '피크 코리아'를 벗어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필자 소개 : 제조업과 산업도시, 기술 혁신과 엔지니어를 연구합니다.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며 사회조사방법론, 통계학,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 과학기술학을 강의합니다. 정치학, 문화인류학, 과학기술정책(혁신 연구)을 공부했습니다. 조선소에서 5년간 근무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담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산업에 대한 이야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를 썼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산업도시 울산을 살펴보며 50년 전 중화학 공업화로 형성된 한국의 주력 제조업과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디지털·에너지 전환, 수도권 쏠림을 딛고 생존 가능할지 고민합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은이), 부키(202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