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0 08:49최종 업데이트 24.04.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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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덕분에 일식이 지나는 도시들은 톡톡히 관광특수를 누렸습니다. ⓒ 강인규

 
"4월 8일은 개기일식인데, 수업을 하나요?"

지난달, 제 강의를 듣고 있는 베카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일식 때문에 휴강을 한다니요? 하지만 학생은 정색을 하며, 다른 강의는 모두 취소되거나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학교에서 휴강 권유가 교수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지구, 달, 태양이 나란히 놓여 달의 그림자가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  제가 개기일식에 대해 알던 내용은 책에서 읽은 이론이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이 자연현상이 제가 사는 도시에 어떤 실제적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내의 호텔은 일찌감치 동이 났고, 시 교통국은 "관광객의 유입으로 심각한 교통체증이 예상되니, 운전을 피하고 집에 머물라"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그제야 '일식이라고 휴강을 하나' 되물었던 제 생각이 짧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통혼잡으로 통학이 어려울 학생들을 배려하는 동시에, 이들에게 일식을 감상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이번 주에 두 개의 큰 사건이 눈앞에 연이어 펼쳐질 터였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9일 아침(미국 시간으로 8일) 개기일식에 이어, 다음날 한국에서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입니다. 저는 이틀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선거는 그렇다 쳐도, 일식을 조바심 내며 기다릴 이유가 있었냐고요? 그날은 새벽부터 구름이 몰려오더니 해가 뜰 무렵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회색빛 짙은 구름에 덮여 해가 어디쯤 있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런 날씨가 정오 넘게 이어지다 보니, 곧 시작될 일식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오후 1시가 넘어가자 탁한 빛의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이곳저곳 조금씩 드러나더니 2시쯤 되어서는 눈부신 해가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2시 2분부터 둥근 빵을 조금씩 파먹듯 천천히 일식이 시작됐습니다.
 

미국 동부시간으로 오후 2시 2분부터 부분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달에 가려지기 시작한 태양이 보입니다. ⓒ 강인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두 이벤트

주위는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잔디 곳곳에 앉고 누운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우주쇼'의 하나로 불리는 개기일식이 고대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26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일식주기를 계산해 내면서 신의 '분노'와 '저주'로 인식됐던 현상은 서서히 '축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현상에 초자연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컨대 미국의 한 종교 지도자는 이번 일식을 '미국을 향한 신의 경고'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고액의 투자사기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력을 갖고 있는데, 그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분일식이 한 시간 넘게 서서히 진행되다가 3시 16분에 드디어 해가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이 나타났습니다. 4분 넘게 달이 해와 완전히 겹쳐 어두워지자, 가로등 센서는 밤이 온 것으로 착각해 등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이후 미항공우주국(NASA)을 통해 이곳 온도가 섭씨 10도 가까이 하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낮이 밤이 되고,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던 해가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는 백금반지로 바뀌는 장면은 신비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순간, 과거에 개기일식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유가 어느정도 이해됐습니다. 일식이 느릿느릿 진행되다가, 해와 달이 완전히 겹치는 순간 갑자기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필터를 사용해 찍은 부분일식 사진으로, 태양의 흑점을 볼 수 있습니다 ⓒ 강인규

 

일식이 꽤 진행돼, 태양이 초승달처럼 보입니다. ⓒ 강인규

 

해가 조금이라도 드러난 시기에는 육안으로 평상시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태양이 그만큼 밝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해와 민주주의가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완전히 가려지기 전까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어렵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실제로 영어권에서 '일식(eclipse)'이라는 말은 민주주의 극적 퇴행을 뜻하는 수사적 표현으로도 널리 사용됩니다. "현 정부 들어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Under the current administration, Korean democracy has been severely eclipsed.)"처럼 말이지요. 실제로 여러 나라들이 한국의 '독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개기일식과 한국의 총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일 첫날인 5일 오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앞에서 '4월에 펼쳐지는 두 개의 주요 사건'을 말했습니다만, 사실은 두 번째가 훨씬 중요합니다. 일식은 특정 지역에서 일부 사람만이 잠깐 동안 볼 수 있을 뿐이지만, 한국의 총선은 한국인 모두의 삶에 3년 넘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식은 그저 지켜볼 뿐이고, 이 관람조차 날씨에 따라 불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선거는 직접 참여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택과 의지의 산물이 아닌가요. 미국의 일식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식은 끝났고, 이제 세계의 눈은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총선 결과는 한국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일식과 선거의 관점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개기일식은 태양이 어떻게 가려지는가를 보는 반면, 선거는 어떻게 그늘에서 벗어나는가가 주안점일 테니까요. 게다가 한국은 이미 2년 넘게 '개기일식'을 경험하지 않았던가요?

동포 한국인들의 선택을 믿습니다. 
 

구름에 가린 해는 육안으로도 일식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 강인규

 

완전한 개기일식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사진입니다. 달 언저리로 새어나온 일광이 마치 반지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 강인규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 상태의 사진입니다. 태양 아래쪽으로 이글거리는 홍염이 보입니다. ⓒ 강인규

 

완전한 개기일식은 3시 16분에 시작해 4분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도시가 밤처럼 어두워지고, 기온도 급격이 떨어졌습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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