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하찮아도, 아무리 사소해도 내가 즐겁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소중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리라.
김미래/달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과 양털 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많은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일이고, 나처럼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소망이다. 그런데 사소하다고?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겐 너무 소중한 것이고,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심정이리라.
그럼, 혹시 내가 소중한 것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삶에 필요한 건 모두 소중한 것인데도, 더 나은 삶, 남보다 좋은 삶에 필요한 것만이 소중한 것이라 착각한 건 아닐까? 나의 몸과 마음을 사람답게 가꿔주는 정말 소중한 것인데도, 너무 흔해서, 누구나 갖고 있어서, 보이지 않아서 그리고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어리석게도 그 중요한 것들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이런 내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자연에서 생존 경쟁을 하고 있을 때는 물 한 방울, 반쯤 썩은 과일, 습기 차고 컴컴한 동굴, 온몸을 감싸주는 따뜻한 햇빛처럼 하찮거나 사소한 것도 모두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동물적 본능이 있다. 생존 경쟁도 해야 했지만, 흔히 남자에겐 수컷 본능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른바 서열 본능을 우리 인간은 모두 갖고 있다. '나'는 '남'보다 어떤 면에서든 조금은 우월하고 싶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이 아닌 인간끼리의 경쟁도 늘어갔다.
경쟁은 비교를 낳았다. '더 좋은', 혹은 '더 나은'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이 소중한 게 됐다. 우리가 새롭게 살게 된 물질문명이 점점 더 풍요로워지면서 기존의 소중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됐고, 당연해서 사소한 것이 됐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에서 물질적 풍요와 그 풍요를 가능케 하는 권력만이 소중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보태진 것 같다.
사람은 물질이 가져다주는 에너지만으로 살 수 없다. 정신 에너지도 꼭 필요하다. 비록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지만, 정신 에너지는 몸 에너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정신 에너지가 부족하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보충을 해주어도 몸 에너지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시쳇말로 '멘붕'이 오고, '번아웃'이 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아무리 멋진 몸을 가졌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슬프게도 인간끼리의 생존 경쟁에 더욱 유리한 것이 소중한 것이고, 우리를 사람답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정말 소중한 정신 에너지의 원천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버리고 만 게 아닌가 싶다.
사랑, 즐거움, 어울림, 그리움, 친절, 감사 등등, 경쟁을 가져온 풍요로운 물질문명 속에서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보충하던 그 소중한 것들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해 외면하고 무시했던 것 같다.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이유를 다시 하나하나 들어봤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없게 된 후 느낀 후회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 봤다. 모두 너무도 중요한 것들인데, 우습게도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할 수 없게 되면 아무리 통곡하며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후회하는 것들은 언제나 곁에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사소하다며 나중으로 미루고 미룬 것들이었다. 나 역시 시력을 잃기 전에 그랬다.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도 그랬나 보다.
나도 모르게 시인 반칠환이 <한평생>에서 한 경고가 튀어 나온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은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좋은 일은 사소한 것일 수 없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흔해도, 내겐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날이다. 미룰 이유도 없고 미뤄서도 안 된다. '더 좋을' 필요도 없고, '더 나을' 필요도 없다.
좋은 건 지금이어야 좋은 거고, 하고 싶은 건 지금 해야 좋은 거다. 나쁜 짓만 아니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당장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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