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1 20:50최종 업데이트 24.03.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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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 만화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를 그린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지난 1일 급성 경막하 출혈로 별세했다고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했다. 향년 68세. 사진은 도리야마 아키라씨 인스타그램 이미지 캡처.연합뉴스
 
2009년 4월 뇌출혈로 쓰러졌던 나는 그해 10월까지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론 알지 못하지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세 사람의 죽음을 접했다. 비록 대통령 선출 당시 한 살 차이로 투표권이 없었지만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내 손으로 뽑은 첫 번째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가요만 듣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외국가수였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었다.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좋아했던 세 사람이 차례로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연속으로 접하면서 나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의 나이가 더해진 나는 감정이 무뎌진 탓인지 어지간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어도 크게 슬프거나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물론 이 기간엔 직계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무덤덤한 삶을 이어오던 올해 3월 8일, 나는 <드래곤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여느 때처럼 대충 보고 넘어가려 했으나 자꾸만 그의 별세 소식이 생각나고 가슴이 아팠다. 비록 토리야마 작가와 그 어떤 개인적인 인연도 없었지만 비슷한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의 대표작 <드래곤볼>과 함께 성장했고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읽었던 '드래곤볼 키즈'였기 때문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30~40대 남학생들 중에서 학창시절 '드래곤볼 모으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양형석
 
세계적 센세이션 일으켰던 <드래곤볼>

초등학교 4학년이 끝나가던 1988년 12월, 만화 주간지 <아이큐 점프>가 창간됐다. <보물섬>과 <소년중앙>으로 대표되는 월간 만화잡지에 익숙하던 어린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새 이야기가 나오는 <아이큐 점프>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물론 초등학생에게 1000원이라는 가격은 꽤 부담스러운 돈이었기에 당시 나는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들 몇 명과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아이큐 점프를 구입한 후 공평하게 돌려 보기로 MOU(?)를 체결했다.

<아이큐 점프>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1989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드래곤볼>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드래곤볼>은 연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불법 수입된 해적판으로 문방구 일대에서 판매됐지만 정식으로 연재되는 <드래곤볼>의 재미와 퀄리티는 해적판의 그것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다.

연재 초기만 하더라도 <드래곤볼>은 '7개의 구슬을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손오공과 부르마가 드래곤볼을 찾아 떠나는 모험물로 진행됐다. 하지만 피라후 일당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용신에게 소원을 비는 데 성공한 인물은 손오공도 부르마도 야무치도 피라후도 아닌 매우 하찮은 소원을 빈 '변태 돼지' 오룡이었다. 그 후 손오공은 할아버지의 스승인 무천도사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다.

<드래곤볼>이 인기를 끌면서 독자들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했고, 그가 <드래곤볼> 연재를 시작하기 전 <닥터 슬럼프>라는 또 다른 명작을 연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닥터 슬럼프>는 천재 발명가에 의해 탄생한 엄청난 힘을 가진 소녀 인조인간 아라레의 일상과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닥터 슬럼프>는 국내에 다소 늦게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드래곤볼>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드래곤볼>에도 아라레를 비롯한 <닥터 슬럼프> 캐릭터들이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레드리본군의 블루 장군이 손오공 일행으로부터 드래곤볼을 빼앗아 달아나던 중 펭귄마을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블루장군은 손오공을 협박하기 위해 아라레를 인질로 잡았다가 역으로 아라레에게 크게 혼이 난다. 당시 시점에서 보면 <닥터 슬럼프>의 주인공 아라레의 전투력이 <드래곤볼> 천하제일 무술대회 준우승자 손오공보다 훨씬 강했다는 뜻이다.

'초인 배틀물' 전환 후 더욱 커진 재미
 
<드래곤볼>은 연재종료 후에도 애니메이션으로 꾸준히 제작돼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주)이수 C&E
 
손오공의 모험과 천하제일 무술대회가 중심을 이루던 <드래곤볼>은 손오공이 2전3기 끝에 마주니어(피콜로)를 꺾고 천하제일 무술대회 우승을 차지한 후 '초인 배틀물'로 장르가 바뀐다. '스카우터'라는 신문물이 등장하면서 캐릭터들의 전투력이 수치로 표시됐고 손오공과 피콜로가 다른 별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설정도 등장했다. 갑작스럽게 많은 설정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거란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크게 사이어인 편과 프리저편, 인조인간 편, 마인 부우 편으로 나눠진 <드래곤볼>의 중·후반부는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떠난 나메크별에서 만난 프리저는 기껏해야 2~3만을 오가는 전투력에서 '최강'을 논하던 <드래곤볼>의 세계관에서 자신의 전투력이 '53만'임을 밝히며 독자들을 경악시켰다. 프리저의 놀라운 전투력에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인조인간 편에서는 한 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선역 신캐릭터가 등장했다. 바로 미래에서 온 전사 트랭크스였다. 등장하자마자 프리저 부자를 가볍게 해치우며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트랭크스는 곧 베지터와 부르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사이어인'임이 밝혀졌다. 비록 '완전체 셀'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아버지와의 수련으로 더욱 강해진 트랭크스는 미래로 돌아가 인조인간 17, 18호를 가볍게 제압하고 평화를 되찾았다.

인조인간 편까지 독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드래곤볼>은 마인부우 편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했다. 손오공의 죽음 이후를 보여준 것은 반가웠지만 이야기를 지나치게 끌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초사이언3와 퓨전, 미스틱 오반 등 중구난방으로 늘어난 설정은 독자들의 집중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토리야마 작가는 손오공이 원기옥을 통해 마인 부우를 물리치는 최후의 전투를 끝으로 11년에 걸친 긴 연재를 마감했다.

<드래곤볼>은 1995년 연재 종료 후에도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게임, 피규어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해 인기를 이어갔다(물론 한국과 대만,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실사영화는 모두 '졸작'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야무치가 재배맨의 자폭공격에 당해 웅크린 채 사망한 자세의 피규어와 차오즈가 내퍼의 등에 매달려 자폭하기 직전 눈물을 흘리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백팩은 <드래곤볼>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망 직전까지 활발한 활동했던 토리야마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는 <드래곤볼> 완결 후에도 끊임없이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게임들의 감수와 원안, 캐릭터 디자인 작업 등에 참여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토리야마 작가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 소년점프에 <네코마인>이라는 개그만화를 연재했는데 손오공이 주인공 중 한 명인 Z의 스승으로 등장해 독자들의 반가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비정기 연재물이었던 <네코마인>은 <드래곤볼> 정도의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작업을 소화하며 열정을 불태운 토리야마 작가는 지난 1일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향년 6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8일 <드래곤볼>의 공식 계정을 통해 이 사실이 발표됐다. 토리야마 작가는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최신작의 감수를 맡는 등 사망 직전까지도 <드래곤볼>의 원작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작가는 공교롭게도 <드래곤볼> 연재가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청룡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바다 건너 일본에 사는 만화가의 죽음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드래곤볼>과 함께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많은 사람들은 토리야마 작가가 천국에서 훌륭한 만화가들을 만나 아무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만화를 실컷 그리며 영면하기를 기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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