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이 클러스터 국가대항전 형태로 전개중이라는 산업부의 설명. 미국 관련 “설계에서 제조로, 전 국토의 클러스터화 추진”이라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산업부
산업부는 보도자료에서 "반도체 산업 전쟁은 클러스터 국가대항전 형태로 전개 중"이라며 우리도 클러스터에 다 끌어모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대만, 미국, 독일 등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반도체 팹과 연관 산업들을 한 군데에 다 몰아넣어서 클러스터를 만들고 있을까요?
산업부는 일본을 두고 "구마모토현을 日 반도체 산업 재건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만 기업 TSMC가 팹을 건설 중인 곳은 일본 열도의 최남단 구마모토 맞습니다, 그럼, 미국 기업 마이크론 역시 구마모토에 있을까요? 아닙니다. 200km 이상 떨어진 히로시마에 있습니다. 일본 전자 업체가 연합하여 만든 라피더스는 구마모토에서 2200km 이상 떨어진 일본 열도의 최북단 홋카이도에 있습니다.
대만 TSMC만 해도 경상도 크기만 한 대만에서 팹을 한군데 모아 놓지 않고 신주,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이렇게 분산시켜 놨습니다. 미국에 대한 설명은 저를 좀 웃겼습니다. "설계에서 제조로, 전 국토의 클러스터화 추진"이랍니다. 우리도 미국을 따라 전 국토의 클러스터화를 추진하면 안 되겠습니까?
실제로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 국가들은 반도체 팹을 최대한 분산시켜 놓는 추세입니다. 다국적 반도체 기업들의 자사 반도체 팹을 서로 다른 나라에 만들기도 합니다. 인텔만 해도 미국 외에 아일랜드와 이스라엘에 별도의 팹이 있고 독일에 신규 팹을 추진 중입니다. 패키징 시설은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 분산해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반도체 관련 모든 업체를 수도권 근처 한 지역에 억지로 모아 놓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인텔의 반도체 제조시설. 팹 하나당 투자금이 워낙 크기 때문에 한군데 몰려 있다가 사고가 나면 회복이 불가능해서 분산 배치를 합니다.
인텔
세계 최대의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건 듣기에만 그럴듯할 뿐 자연재해나 군사 분쟁 혹은 가스 폭발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제대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함께 몰락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방식입니다. 수도권 집중에 대한 우려와 지역 균형 발전 원칙 위배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한 말장난이 "세계 최대의 클러스터"라는 허울 아닌가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업부는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2037년 이후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계획도 세워 놓았습니다. 호남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수도권까지 송전탑을 세워 끌고 가는 것 보다 반도체 팹을 호남에 짓는 게 휠씬 수월한 방법 아닐까요?
대통령의 의욕, 불안하다
대통령님은 반도체 클러스터로 인해 "앞으로 20년에 걸쳐서 최소한 양질의 일자리가 300만 개는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양질의 일자리가 왜 꼭 수도권에만 생겨야 하는 지에 대해 답을 듣고 싶습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고향을 버리고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지방의 청년들 역시 대통령님이 챙겨야 할 우리 국민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도권에는 양질의 일자리를, 동해안과 호남에는 경기도에서 사용할 전기 생산과 송전을 위해 원전과 송전탑을 나눠 주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대통령님은 민생토론회에서 "국가안보실 안에 경제 안보와 첨단기술 안보를 담당하는 제3차장직을 신설했다"면서 "반도체 산업의 혁명적 발전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초부터 대통령님이 직접 나서서 이미 발표했던 투자계획을 재탕하고 부풀리면서까지 반도체에 대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전 불안합니다.
반도체 산업보단 원전 산업에 더 관심 있어 보이고, 지역 균형발전보단 수도권 개발사업에 더 집중하는 듯한 대통령님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간섭하고 챙기다간, 서울-양평간 고속도로 계획처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도 제 갈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겁니다.
▲2000년과 2021년 상위 20개 글로벌 반도체 수입국. 20년 전에는 미국이 1위였지만 2021년은 중국이 압도적 1위입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끝으로 대통령님은 "비싼 물건을 파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라며 최첨단 반도체를 통해서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이며, 금액을 기준으로 세계 5위의 반도체 수출국입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3년 보고서) 그럼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입국은 어디일까요? 전체 반도체 수입의 54%에 이르는 중국(홍콩 포함)입니다.
대통령님의 바람대로 비싼 반도체를 만드는 건 우리 기업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데 그걸 팔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님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자꾸 자극하면 우리가 반도체를 판매할 시장의 문을 자꾸만 닫는 행위입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먼저 꺼내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가장 힘든 건 우리 반도체 산업입니다. 다 떠나서 "반도체 산업의 혁명적 발전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결정만큼은 재고해 주기를 바랍니다. 도움이 전혀 안 돼서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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