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누리 가족
박내현
10년은 짧지 않다. 두 사람의 말처럼 '직접 관련없는 사람'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얘기할 사람이 없다고 느껴졌고 세상이 달라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2월, 4·16재단에서 열린 발기인 모임에 참여했다.
"유가족, 재단 사람 외에 일반인은 우리뿐이더라고요. 어색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같은 테이블에 있던 유가족이 가온이랑 누리한테 눈을 못 떼시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떠나간 아이들이랑 이제 비슷한 또래가 되고 있잖아요. (유가족들에게)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라고 했더니 펑펑 울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만 해도 되겠다, 투사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 같은 시민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게 내 소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이 뭐 대단한 활동은 아니지만, 그거라도 나 같은 사람, 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자. 그분들이 그렇게 느껴주신다면 한 10년, 그래도 잘 왔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강희)
엄마·아빠와 오랜 시간 세월호 관련 행사에 참여했지만, 가온이는 주변 친구들과는 세월호를 주제로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 유튜브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이 가족에게 남긴 메시지를 모아놓은 영상을 보다가 눈물을 쏟았다.
"갑자기 가온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막 우는 거예요. 엄마 아빠에게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막연히 듣기만 했는데, 직접 보니까 마음이 좀 그랬나 봐요. '엄마, 세월호가 이런 일이었어'라며 말을 못 잇더라고요. '그래, 이런 슬픈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겠지'라고만 했어요." (강희)
가온이와 누리 같은 10대에게 세월호는 되려 낯선 일이다. 너무 어릴 적 일어난 일이라 가끔 매체를 통해서, 혹은 학교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들어도 그 사건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안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는 정도다. 그래서 우철씨는 4·16재단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나 사업을 더 많이 해주길 바란다.
"서글픈 생각인데 우리 세대는 정말 내 자신이나 내 가족한테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월호참사 후에 1년 정도 '정말 나한테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며 사람들이 움직였다고 봐요. 추모는 하지만, 내 일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우리 부모 세대의 행동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온이나 누리가 계속 이걸(세월호참사를)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철)
가온누리 가족은 지난해 부천 송내도서관에서 준비한 추모 행사에 다녀왔다. 청소년 센터에 속한 청소년들이 직접 준비한 행사였는데, 가온이와 누리 또래의 아이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의미 있었다. 세월호참사가 10년 전의 일이 아니라는 걸 이태원참사로 다시 느꼈기에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사회적 안전과 관련한 고민을 이어가며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여유 있어야 주변을 둘러보는데 요즘은 다들 힘드니까 각자도생이랄까요. 그래서 개인이 내면의 힘을 길러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여유를 갖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건전한 이기주의자, 주변의 불안함에 휘둘리지 않고 최소한 남에게 해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강희)
강희씨는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그저 스스로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는 답답함에 세월호 연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고 아이들도 함께해 위로받았다고도 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껴질수록 주위를 둘러보기 어렵다. 하지만 강희씨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필요한 곳으로 갔다.
강희씨와 우철씨 부부는 지난해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안에서 한 걸음의 의미를 깨닫고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1km 뛸 때 죽을 것 같다가 또 어떻게 겨우 2km 뛰어요. '그래 오늘 잘했어, 훌륭해'하며 뛰다 보니 어느덧 10km를 뛰고 있더라고요. 꼬박 열달 걸렸어요. 그렇게 한 발 한 발 뛰면서 '그냥 내 경험이구나. 내가 느끼는 경험이고 내가 느끼는 가치고, 결국 내가 스스로 딛는 발걸음이구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강희)
10km를 뛰기 위해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이 있었다. 세월호참사에 연대할 수 있었던 것도 하루하루 쌓아온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노란 리본을 새롭게 고쳐 달고, 누가 뭐라든 휘둘리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면서 보내온 하루하루. 박강희·김우철씨처럼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덕분에 세월호는 '그들만의 일'로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다. 평범한 소시민이 모여 2014년의 시간을 2024년까지 이어오고 있다. 수많은 소시민이 앞으로도 그 시간을 이어갈 것이다.
▲4·16재단 출범식
가온누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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