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416공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애숙씨(왼쪽)와 김영미씨가 세월호 전국 순회 간담회에 참석해 함께 찍은 사진
김애숙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진상규명은 그대로였다. 선조위도 사참위도 왜 배가 가라앉았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 세월호 선체도 개방을 한댔다 안 한댔다, 안전생명공원 설립도 지연됐다.
또 한 번 정권이 바뀌었고 선체 내부는 출입이 완전히 금지됐다. 선체가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하루 아침에 선체가 있는 항만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바뀌었다. 유가족과 실천회의는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안내문만 크게 걸렸다. '다시는 없어야 할 재난'에 김애숙씨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할 만큼 '닥치는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있을 한 건 정부를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부를 못 믿죠. 믿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세월호가 안 터졌으면 (내) 삶은 별로 변함이 없죠. 그런데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 이게 내 일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언젠가 우리한테 닥칠 일이잖아요."
그리고 이태원.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구조되었다면, 그 아이들이 커서 클럽도 가고 핼러윈도 즐겼을 것이다. '우리 세월호 애들이' 딱 그 나이였다. 김애숙씨의 아들은 작년에 군대에 있어 이태원에 가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태원에 놀러 갔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세월호도 이태원도 내 일'이었다. 김애숙씨는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는 걸 또 한번 느꼈고 진상규명이 무엇보다 간절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김애숙씨는 가장 화나는 게 그런 말이라며 한참을 울먹였다.
"누가 아직도 세월호 거기 있어? 그러는데 해결이 안 됐으니까 있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 해줬으면 됐지' 이런 말들이 너무 무서운 것 같아요. 보상금 받으려고 한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거든요. 선체가 위험하다고 출입금지했는데, 위험하다고만 하지말고 빨리 진상규명해서 해결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있다가 진상규명도 안 되고 없어지면 어쩌나 싶어요."
10년이 지나면서 시민 모임도 많이 사라졌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힘이 많이 빠졌다. 진실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김애숙씨가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건 노란 리본 때문이다. 녹슨 고철이 무섭다고 없애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에 여전히 노란색 리본이 걸려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봉사자 부스에서 공감단 회원들과 혹은 유가족들과 만든 리본일까? '어디서 났냐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뿌듯했다.
정부는 믿을 수 없고 속 모르는 얘기를 떠벌리는 사람도 있지만, 세월호를 잊지 못한, 잊지 않을 사람이 더 많다는 걸, 그런 사람들의 힘은 믿을 만하다는 걸 김애숙씨는 익혀 왔다. 그 힘으로 봉사자 부스에서 시작한 활동이 다른 단체까지 넓어졌지만, 김애숙씨에게는 '세월호가 1번'이고 '여기, 신항이 먼저'였다. 그렇게 10년 동안 봉사자 부스를 오갔다.
김애숙씨는 앞으로의 일 같은 건 잘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끝날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한 순범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그 끝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으려 한다. '끝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함께 걸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김애숙씨는 기도한다.
세월호 선체 보전 장소가 어렵게 정해졌다. 그러나 세월호 이동 방안과 함께 세월호 안에 있던 자동차와 유류품 폐기 문제와 추모관 등의 공간 설립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또한 가족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승객이 다섯 있다. 녹이 슨 세월호 선체는 항만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머물고 있다. 선체와 함께 인양되리라 기대했던 진실과 진상은 인양되지 않은 채, 관련자는 무죄를 받고 책임자는 풀려나기도 하는 2023년. 세월호는 아직,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