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튜브톱을 입다 ‘누구나 고유한 훌라를 춘다’라는 훌라의 메시지는 어떤 몸이나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전윤정
내가 훌라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오~ 역시 건강엔 운동이 최고! 집에 안 쓰는 훌라(후프) 줄게"라든지, "설마 그 훌라(카드 게임)는 아니겠죠?"라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코코넛 브라?"라며 짓궂은 농담을 건네는 친구도 있다.
물론 코코넛 브래지어를 입지는 않지만, 배가 보이는 크롭티 혹은 요가, 운동 등을 할 때 입는 브라톱을 상의로 입은 수강생들이 많다. 나는 삼 년 전 완경(폐경)을 한 이후로 팔과 배에 군살이 쪄서 평소에 민소매조차 절대 입지 않았다. 그들이 부러워서 두툼한 팔뚝 살과 늘어진 뱃살을 원망했다.
그러나 '누구나 고유한 훌라를 춘다'라는 훌라의 메시지는 어떤 몸이나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몸이 왜소하거나 큰 대로 '나만의 훌라'를 만들 수 있다. 큰 파도와 작은 파도, 부서지는 파도까지 모두 바다의 파도다. 넘실대는 크고 작은 파도의 어울림과 부서지는 파도의 반짝임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듯이 다양한 몸이 함께 추는 훌라는 그 자체로 멋지다.
지난 가을, 나는 훌라 수업 때 용기 내서 어깨와 팔을 드러내는 튜브톱을 입어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세상의 미(美)의 기준과 상관없이 내가 만든 금기를 깼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훌라 안에서의 작은 도전 역시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느슨하지만 다정한 인연, '오하나'
훌라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사람과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훌라를 막 시작하고 썼던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뜻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훌라 오하나 되신 것을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그때 '오하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하나(ohana)는 하와이어로 '가족'이라는 뜻인데, 단순한 혈연을 넘어 친구와 이웃 등 서로를 위하면서 영원히 기억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훌라 동작을 함께 익히며, 박자에 맞게 같은 동작을 해낼 때 맛보는 기쁨의 시간이 쌓이면서 '오하나'가 되어간다.
훌라 수업 전, 근황을 나누는 시간에 다양한 나이와 직업, 삶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 또한 가족으로 묶어준다. 생일이었다는 사람에게 생일 노래를 신나게 불러주고, 청혼을 받았다는 말에 모두 손뼉 치며 내 일처럼 기뻐해 준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에게는 위로를, 부부싸움을 한 이에게는 너도나도 위기를 넘기는 비법을 전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IT기업을 나와 새 사업을 시작한 이, 전통 막걸리를 만들고 가르치는 이, 타투이스트나 프리 다이빙 강사로 세계를 돌며 일하는 이 등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동네 카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이의 일상을 통해 손님으로는 몰랐을 고충을 알게 되고, 어린이연극 배우의 연기 후기를 들으며 나도 살짝 동심을 맛본다. 아픈 반려동물을 말하며 펑펑 울 수 있고, 번아웃으로 생긴 우울감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할까. 느슨하지만 다정한 '오하나'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