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장비를 함께 생산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RE100 가입 계획을 세워 두는 등 다른 업체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주성엔지니어링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장비와 함께 태양광 장비를 함께 생산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이 "탄소중립 및 환경이슈 관련 중장기 목표 및 전략"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RE100 가입 계획 및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밝힌 게 눈에 띕니다.
외국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탄소 중립과 재생에너지 사용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RE100에 가입하고 재생에너지 달성 목표를 설정한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장비업체에도 같은 조건을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탄소 중립 달성 여부가 반도체 장비 판매를 위한 필수 선결 조건이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걸 달성하기 위해 해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플랫폼 설계부터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왜 이렇게 탄소 중립과 재생에너지 사용에 소극적인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한국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탄소 중립을 방해하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총 발전량의 7.15%입니다.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28.1%에 비하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국내 재생에너지 총발전량은 약 43테라와트시(TWh)로 포스코와 삼성전자, 이 두 회사가 일년에 사용하는 전력량 보다도 적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오히려 낮춰 버렸습니다.
그러니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어디서 재생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으며 어떻게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지난 3월 대통령께서 야심 차게 발표했던 '용인 300조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기억하시나요? 300조 원을 투자해서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5개 짓고, 소재·부품·장비 기업 150곳을 유치한다고 했습니다.
그 클러스터를 운영하려면 10기가와트(GW)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측입니다. 이는 현재 수도권 전력수요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산업부와 한국전력은 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그 클러스터 안에 LNG발전소 6기를 신설한다는 계획입니다. LNG발전은 재생에너지가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함께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LNG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가지고 삼성반도체 팹 5개를 운영하면서 RE100을 달성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RE100을 포기하든 반도체 팹 5개를 포기하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겁니다. 삼성전자의 고객사인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에 납품하는 모든 협력업체에 RE100 조기 달성을 요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통령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습니까?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구하지 못하게 된 삼성전자가 용인 대신 미국의 텍사스에 신규 팹을 짓는 건 기업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삼성전자 미국지사의 경우는 진작에 RE100을 달성한 상태입니다. 지금 정부의 정책대로라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유치하겠다는 소부장업체 150곳도 클러스터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삼성전자조차 구하지 못하는 재생에너지를 반도체 소부장업체들이라고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반도체 소부장업체들 역시 생산 거점을 재생에너지 수급이 가능한 곳으로 옮기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국의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최대 고객사가 있는 한국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싶어도 재생에너지를 구하지 못해 들어오길 꺼리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우리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옮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RE100이 뭔지 몰라 답하지 못했던 것은 그냥 민망하고 말 일입니다. 하지만 그 후로 RE100과 재생에너지를 적대시하고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가로막는 정책을 펴는 건 국익에 해가 되는 일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 산업에 대한 투자와 발전에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대통령님입니다. 지금이라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통령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게 바뀌지 않으면 저부터도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대통령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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