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3일(현지시간) 헤이그의 116년 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리더잘(기사의 전당)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2023.12.14 [공동취재]
연합뉴스
1907년과 2023년
1899년 제1회에 이어 1907년에도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는 당초 예정보다 1년 연기된 행사였다. 김동진 회장의 책에 인용된 이태진 서울대 교수의 학술대회 발표문은 "원래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1906년 8월에 개최될 예정이었고, 이미 1905년 10월에 한국이 초청을 받았으나 일본이 한국이 초청된 사실을 알고 회의를 1년 연기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설명한다.
을사늑약 직전에 대한제국이 초청을 받은 이 같은 상태를 흐지부지시킬 목적으로 일본이 채택한 전략은 '대한제국은 자격이 없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헤이그에 파견된 일본 대표단이 받은 본국 훈령에도 이것이 반영됐다.
2015년에 <한일관계사연구> 제51집에 수록된 한성민 대전대 강사의 논문 '제2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헤이그만국평화회의 일본외교문서>를 근거로 "이들에게 내려진 훈령의 첫 조항은 '한국이 제2회 평화회의에서 그것을 대표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외국 대표단을 상대로도 동일한 부탁을 했다. 위 논문은 "일본 대표단은 러시아와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국의 평화회의 참가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여 회의 개회 전날인 14일 러시아로부터 '한국은 결코 제2회 평화회의에 초청되지 않았음'을 확인받았다"고 기술한다.
대한제국도 초청을 받았고 정식 특사단이 헤이그에 파견됐는데도, 일본은 '한국은 참가 자격이 없다'는 논리를 밀어붙였다. '한국은 없다'를 강조하는 이런 전략은 오늘날의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는 '일본은 없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는 전범기업과 자국 정부의 책임이 없음을 강조한다. 위안부 소송에 대해서는 '이 재판에 일본 국가는 없다'는 주장으로 대응한다.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며 위안부 재판에 대해 '노쇼'로 일관한다.
2021년 1월 8일 이옥선 할머니 등을 비롯한 원고 12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자, 그날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며 "이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정에 설 수 없는 주체를 피고로 세웠으므로 본안 심리 자체를 거부하는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은 외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손해를 끼칠 때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자국 법정에 세우는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는 '일본은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07년에 한국인들은 무효·불법을 내세우며 한일관계를 바로잡고자 했다. 지금의 징용·위안부 피해자들도 무효·불법을 호소하며 한일관계를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은 별반 다르지 않다. 1907년에는 '대한제국은 없다'는 전략으로, 오늘날에는 '일본은 없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일본에 대해 윤 정부는 상당한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1907년 헤이그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의 한일관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한 측면들이 있다. 이 상황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깊이 연루돼 있다. 대통령실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초 방문"이라며 리더잘 및 이준열사기념관 방문을 홍보하고 있지만, 이는 일본의 파렴치한 행태에 대한 윤 정권의 조력 제공을 부각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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