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들과 유가족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세월호 제주기억관
장태린
비슷한 시기를 보낸 또래 친구들에게 한 가지 같은 습관이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익숙한 공간에 갈 때도 가장 먼저 비상구를 확인한다. 불이 나거나, 물이 들이차거나, 건물이 붕괴되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2023년 현재 배를 타는 청소년들도 두려움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세월호 이후에도 수많은 참사들이 있었다. 배가 침몰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던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은 '무기력'이 아닐까. 제주의 활동가들도 그 세월을 지나며 지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 무기력 사이에서, 세월호 10주기를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 물었다.
"5.18 때도 10주기를 기점으로 '할 만큼 했잖아'라는 반응이 나왔었다고 해요. 해결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추모가 끝날 수 있겠어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주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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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활동가가 평화쉼터에 와 계셨어요. 어머님은 '세월호가 부럽다'고 하세요.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죽는 청소년·청년들은 기억 공간을 만들지 않아 쉽게 잊혀져 버린다는 거예요. 공간이 주는 의미는 '잊지 않겠다'는 것에 있잖아요. 사고·참사가 반복되는 건 잊혀져서라고 생각해요. 삼풍백화점 붕괴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추모비가 공원 구석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다잖아요. 너무 충격적이죠. 그나마 있는 기억 공간들도 없애 버리고, 지워 버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래서 공간을 더 열심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은영)
"세월호참사 이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사회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느껴요. 제가 생각하는 안전한 나라는 걱정하지 않는 나라예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회, 놀러 다닐 수 있는 사회. 밤늦게 다녀도 무섭지 않은 사회가 안전 사회인 것 같아요. 1년 내내는 아니더라도, 4월 한 주라도 함께 추모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초등학생 때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 엄청 큰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세월호참사 당시 영상을 보면, 지금 제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랑 똑같거든요. 여기서 10년이 더 지나면, 2014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제 나이가 되겠죠? 만약에 우리 사회가 좋게 바뀌었다면, 이를 기점으로 이렇게 바뀌었다고 기쁘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로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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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서 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기억을 되살리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세월호가 벌써 9년이 됐어요?' 라고 되묻는 분들이 많으세요. 하지만 사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잊혀져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리본 나눔 같은 활동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아주 좋았던 기억, 아주 슬펐던 기억은 잘 잊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세월호를 소개하려 해요. 잠수사분들이 어떤 과정으로 구조를 했는지, 미수습자 가족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생일인 아이들을 꼭 소개해요. 오래 기억하시라는 마음으로요." (박은영)
오랫동안 기억하려는 마음을 담아 직접 짓고 가꿔온 공간이자, '세제모'라는 단체가 탄생한 공간인 한 세월호 제주기억관. 이들은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떤 곳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을까.
"사람들이 더 많이 기억관에 왔으면 좋겠어요. 아, 10주기 행사에 높은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저희가 9주기 행사를 하면서 세제모 친구들이랑 평가 회의를 하는데, '이런 일들을 우리 같은 청소년이 아니라 정부에서 해야 하는 것 아냐'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교육감이나 도지사가 추모 행사를 기획하고, 우리가 손님으로 가 봤으면 좋겠어요. 도지사님 오시라고 전화도 했는데 안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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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관 많이 오시는 분들이 도지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대통령 되면 더 좋겠는데요, 저희가 직접 나갈까요? 당 만들려고 이름도 정했어요.(웃음) 전국구가 되어야겠어요. 지난번에 광주 청소년, 경기도 청소년들도 만났거든요. 세월호를 함께 기억할 새로운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김원)
"앞으로도 그냥 해왔던 것처럼 계속해야죠. 새롭게 뭔가를 더 하는 것보다는 꾸준하게요.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줄어 들고 있어서... 무엇보다 꾸준히 계속 활동하려고 해요."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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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4.16을 기억하는 학생 모임'을 운영한 적이 있다. 지난 2020년, 6주기 추모 행사의 제목을 '다시 묶는 리본'으로 붙였었다. 5주기가 지나며 "이제 그만 할 때 되지 않았냐"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기억하자, 잊지 않겠다 라는 이야기 말고 또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서도 느슨해져 버린 노란 리본을 다시 묶자는 의미를 담아 6주기 행사를 기획했다.
그로부터도 3년이 더 지났다. 세월호 학생들이 닿고자 했던 곳 제주에서 더더욱 바래고 느슨해진 리본을 다시 묶는 이들이 있다. 43번 버스를 타고 세월호 제주기억관을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 마음들이 모인 힘으로, 기억관 앞 노랑 바람개비들은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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