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스틸 컷. 극중에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모티브가 된 인물) 을 맡은 이성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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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은 전두환에게 용감히 맞서기는 했지만, 쿠데타 이전부터 전두환에게 옭아매어져 있었다. 전두환은 장태완의 병력과 공간과 탱크를 쿠데타에 활용했다. 전두환이 장태완을 농락했다고도 평할 수 있다. 이랬기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 전두환 대 장태완 구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장태완이 전두환에게 휘말려 든 장면들만 연이어 부각될 수 있다.
장태완이 훌륭한 군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를 전두환과 대비시켜 선악 구도를 만드는 것은 영화 제목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민주화 대 군부독재라는 상황을 거시적으로 반영하는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면, 영화의 선악 구도도 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 박정희 체제를 떠받치던 군부의 일원인 정승화나 장태완을 전두환의 반대편에 두는 것은 당시의 정국 구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승화가 전두환의 쿠데타를 막고 정국을 주도했다면, 1980년 정세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5·18 광주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어났더라도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승화 역시 박 정권을 떠받치던 군부 수뇌부의 일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정승화가 전두환에게 이기고 지고는 상황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이다. 정승화와 전두환의 대결은 최고지도자를 잃은 박정희 군부 내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박 정권 내부의 다툼을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정승화의 정세 인식이 전두환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은 정승화의 회고록에도 나타난다. 그는 <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에서 "나는 김대중 씨에 대해 이전부터 약간의 의혹을 갖고 있었다"라며 김대중을 공산주의 선동가로 바라보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런 뒤 1979년 11월 26일 계엄사령관 자격으로 언론사 사장들을 초대해 "김대중은 곤란하다"고 발언한 일을 소개한다.
회고록에서 정승화는 자신이 지휘하는 계엄사가 재야 지도자 함석헌을 체포한 사실도 언급했다. 이런 데서 나타나듯이 재야와 야당에 대한 정승화의 인식은 박정희나 전두환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적으로 묘사된 군인들이 1980년을 주도했다 해도 그들이 전두환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었다.
12·12 쿠데타 당일, 장태완 사령관은 반군 쪽에 넘어간 황영시 1군단장과 통화하면서 회유를 시도하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위 육필 수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아니, 형님마저도 이러시기요? 정승화 장군님의 총장 취임 운동을 쫄자인 저한테까지 부탁하던 형님이! 이제 그분이 참모총장이 되셨으니 최선을 다해 모셔야지요."
이 통화에서 나타나듯이 장태완은 정승화 라인의 일원이었다. 정승화가 전두환을 물리치고 상황을 주도했다면, 장태완 역시 정승화의 정세 인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정승화·장태완 등과 전두환의 관계를 선과 악의 구도로 그리는 것은 실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10·26 사태 직후의 군부는 자기들끼리는 주도권 경쟁을 했지만, 민주진영에 대해서는 공동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끼리의 경쟁관계를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제목을 택할 경우에는 전두환의 라이벌을 군부 밖에서 찾는 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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