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해밀턴>의 브로드웨이 초연 공연 사진. 중국계 미국인 배우 필리파 수가 일라이자 해밀턴 역을 맡았다.
Joan Marcus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전할 이야기
※ 이 단락에는 뮤지컬 <해밀턴>과 <식스 더 뮤지컬>의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작품 안으로 들어가 보자. <해밀턴>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은 극이 전개되는 내내 자신의 이름과 명예가 유산(Legacy)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지길 꿈꾼다. 그러나 수많은 정적을 만들었던 그는 결국 결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그렇게 이야기에서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처럼, 극의 마지막에서 알렉산더 해밀턴의 서사를 전하고 유산을 남기는 것은 해밀턴의 아내 일라이자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하는가(Who Lives, Who Dies, Who Tells Your Story)? 이것은 뮤지컬 <해밀턴>의 결말을 장식하는, 일라이자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의 제목이며, <해밀턴>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포스터에도 기재되었던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일라이자는 해밀턴이 남긴 글을 정리해 출판하고, 해밀턴과 함께 독립전쟁에서 싸운 이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며,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뉴욕 최초의 사설 고아원을 설립한 뒤 돌보는 아이들의 눈에서 해밀턴을 떠올린다. 해밀턴 사후 몇십 년의 긴 세월 동안 이 모든 일들을 홀로 해내며 "훗날 사람들이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기억할지"를 질문하고, 이윽고 무대 앞으로 나아가 홀로 조명 아래에서 관객석을 바라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일라이자는 관객을 바라보며 모든 감정이 동시에 밀려 들어오는 듯 벅찬 숨을 들이키는데, 이때 일라이자가 본 것이 자신을 마중 나온 사후세계의 해밀턴인지, 해밀턴의 이야기가 전해진 오늘날의 관객들을 보는 것인지는 배우들의 해석에 따라 다르다.
혹자는 이러한 결말 때문에 이것이 알렉산더 해밀턴뿐만 아니라 일라이자 해밀턴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해밀턴>이라고도 말한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는 그렇게 역사에 남아 기록되고, 21세기의 관객들에게도 닿게 된다.

▲<식스 더 뮤지컬> 영국 투어에서 캐서린 파 역을 맡은 배우 알라나 로빈슨이 'I Don't Need Your Love'를 부르고 있다
Manuel Harlan
한편 <식스 더 뮤지컬>은 정반대 방식으로 서사를 마무리한다. 각자가 자신이 헨리 8세에게 가장 지독하게 당했음을 돌아가며 토로하던 중, 마지막 왕비였던 캐서린 파가 질문한다. 자신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어쩔 수 없이 헨리와 결혼해야 했지만, 왜 이런 불행에 대해서만 노래해야 하냐고. 실제 역사 속의 캐서린 파는 헨리 8세의 마지막 왕비임과 동시에 16세기 영국에서 최초로 책을 펴낸 여성 작가이기도 했으며, 나는 이것을 노래할 것이라고. 이 장면에서 캐서린 파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네 사랑은 필요 없어(I Don't Need Your Love)'다. 그리고 모두가 깨닫게 된다. 헨리 8세와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구조 안에서는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중 하나'로만 기억되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여섯 왕비들은 누군가의 아내라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리믹스(remix)한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간다. 이혼당한 첫 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은 헨리의 청혼을 쿨하게 거절하고 수녀원 성가대에 들어갔는데 발매한 앨범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참수당한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은 헨리가 보낸 편지에 비트를 얹었더니 대박이 나서 지금은 셰익스피어를 위한 가사를 쓰는 중이라며 유쾌한 역사 뒤집기가 이어진다. 영미권에서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은 우리가 '태정태세 문단세'를 외우듯 '이혼-참수-사망-이혼-참수-생존' 으로 기억되어 왔다. 그렇지만 21세기의 관객들이 '누군가의 여섯 아내'가 아니라 '식스'를 기억하는 순간, 이들은 마침내 역사 속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뮤지컬 <해밀턴>과 <식스 더 뮤지컬>의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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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과 <식스 더 뮤지컬> 모두 역사 속 인물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여러 의미로 긍정적인 사회문화적 영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해밀턴>이 있었기에 <식스 더 뮤지컬>의 시대에서는 컬러블라인드 캐스팅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두 작품이 서사를 마무리 짓는 방식은 이토록 다르다. <해밀턴>이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이 작품이 놓쳤던 여성 서사를 <식스 더 뮤지컬>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 속에 단편적으로 박제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꺼내서 해방시킨다. 배우 레슬리 오덤 주니어가 말한 것처럼, <해밀턴>이 남긴 혁명의 릴레이는 <식스 더 뮤지컬>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선주민 배우들이 <해밀턴>을 공연한다면, 그래도 2015년 초연과 같은 혁명이 될 수 있을까? 10년 뒤의 대중이 <식스 더 뮤지컬>을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공연계에 혁명의 릴레이를 이어가고 질문을 던지는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지 기대해본다.
*다음 필자는 조윤아님입니다.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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