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 대입제도 개편 시안 폐지, 전면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10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전교조,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새로운 학교 네트워크 등 교육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이미 시안은 발표되었다. 교육부도 체면이 있는데, 교육시민사회단체의 요구처럼 이제 와서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의 전면 전환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 간곡히 부탁한다. 차라리 2022 개정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전면 폐기를 선언하라. 누더기가 될 바에는 다시 교육과정에 관한 새로운 그림을 차기 정부와 함께 그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공교육 정상화와 미래교육, 아이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몇 가지 포석이라도 두기를 바란다.
우선 수능에서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절대평가로 전환하자. 이 과목의 성격 자체가 깊이 있는 지식 습득보다는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주제 탐구와 토의·토론, 프로젝트, 실험, 융합수업 등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과목이다. 이런 과목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교육부의 시안이 적용되면 고1 수업부터 파행이 일어난다. 오지선다형 문제풀이 수업으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짓눌러서야 되겠는가?
또한, 선택과목이지만 심화수학 도입은 폐기하시라. 의대와 이공계에서 정말로 필요하다면 각 대학에서 심화 성격의 어떤 수학 과목들을 반드시 수강할 것을 요구하고, 지원 기준으로 설정하거나 과목별 가산점(가중치)을 주면 된다. 그렇게 따지면, 각 전공별로 심화과목에 대한 요구가 왜 없겠는가?
내신의 경우, 고1 공통과목은 상대평가 체제로 하되, 선택과목이 본격화되는 2-3학년에서 배우는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은 내신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최소한 진로선택과 융합선택 과목만큼이라도 내신 절대평가로 전환하자.
우선 수능이나 내신을 상대평가로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학 주체들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하자. 극히 일부 대학과 학과를 제외하고는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로도 학생 선발에 큰 문제가 없다. 지원 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굳이 최상위 일부 학생들을 위해 자동차 레이싱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
운전면허증 시험을 앞으로 상대평가로 적용한다고 해보자. 어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어른들도 상대평가 적용을 싫어하면서 유독 아이들에게는 왜 그토록 상대평가를 적용하는가? 대학교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학업역량 수준이 되는가를 판별하면 된다. 그런 시대가 이미 왔다.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낡은 상대평가의 유물이 '미래를 위한 시안'이 될 수는 없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부풀리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내신 부풀리기의 경우, 1등급 동점자수 정도 정보만 제공해 주어도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성취 기준 중심으로 내신 평가가 진행될 수 있도록 내부 관리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하면 된다. 대학에서는 지원자의 수능과 내신 성적을 함께 보기 때문에 부풀리기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의 존재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교육위원회이다. 교육부에서 시안을 발표한 이후에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민정 의원이나 도종환 의원이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교원단체와 교육단체들은 이번 시안에 대해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대입 시안에 대한 여론 수렴을 거쳐 결국 국가교육위원회가 결정을 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기존의 관료조직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충분한 여론 수렴을 해야 하며, 충분한 연구와 학습과 논의를 거쳐 정무적 판단이 아닌,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대입안이 가장 바람직한가에 관해서 자주적·독립적으로·중립적으로,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처럼 교육부의 방안을 형식적으로 추인할 생각이라면, 그냥 교육부 장관 자문위원회로 조직 명칭과 위상을 낮추어야 한다.
이번 대입안을 통해서 누가 웃고 있을까? 상대평가 체제는 곧 사교육 시장의 융성을 의미한다. 사교육 시장이 웃고 있다. 수능이 강화될수록 경제력을 가진 자들은 웃는다. 지방의 일반고는 수능 대비가 더욱 어렵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웃는다. 인적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경제적 자본의 힘이 수능에서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상대평가의 그림자가 공교육에 짙어질수록, 좋은 교육을 향한 열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지금 누가 울고 있을까? 오지선다형 문제풀이식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과정-수업-평가를 꿈꾸었던 이들은 이제 다시 현장에서 침묵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 해보려고 했던 이들은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 "그것 보라고, 대한민국 교육은 절대 안 바뀐다고, 이럴 줄 알았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