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해충 퇴치 업체가 파리의 빈대 문제를 다룬 지역 신문 <르 파리지앵> 1면을 가게 문 앞에 붙여놓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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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1970년대~1980년대 박멸된 빈대가 최근 해외 유입으로 재출현했다는 게 사실일까. 지난 수년간 보도된 국내외 언론 기사를 종합해 봤다.
내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공공장소에서의 빈대 출현이 이슈가 되긴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빈대는 세계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간 이슈가 된 곳은 주로 영국·프랑스 등 유럽,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2006년부터 빈대가 관찰됐다. 2009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청)가 발간한 <주간 건강과 질병>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미 2006년 1례, 2007년 1례, 2008년 2례 빈대 관찰이 보고되었고 관찰 장소는 집단시설, 아파트, 호텔이었다. 2015년 대한피부과학회지가 발간한 논문에서는 해외 여행력이 없는 환자의 빈대물림 사례를 보고했다.
세계화에 따른 사람과 물건의 국가 간 이동 증가는 빈대의 확산, 특히 살충제 내성 빈대의 확산을 용이하게 했다. 혹자는 강력한 살충제인 DDT를 환경영향 우려로 사용 금지한 게 빈대 재출현의 원인이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DDT를 계속 사용했더라도 이미 빈대가 내성을 발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해석이 합리적이다.
다만 공적 방제를 중단하고 방제를 개인 책임으로 전가한 것은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부적정 주거의 경우 열악한 인프라로 물리적 방어가 취약하고 공동 방제 대응이 부족하기 때문에 빈대 확산에 취약할 수 있다. 살충제 오남용은 내성 빈대를 증가시켰다.
최근 유럽, 북미 지역과 한국에서 빈대가 재출현한 것은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폭증한 해외여행 영향이라는 해석이 많다.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중고가구 구매 증가가 추가적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대가 늘어난 게 아니라, 빈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빈대에 물리면 가려움증과 염증반응이 유발된다고 하지만,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은 증상이 없거나 약하다고 하니 이러한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소셜미디어(SNS)로 인해 정보 확산이 용이해진 데다, 해충방제 산업이 성장하면서 빈대 위협과 방제 필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불안과 공포에 편승하는 언론도 한몫했다.
미국 켄트주립대 캐서린 구달(Catherine Goodall) 교수가 학술지 <Health Communication(보건 커뮤니케이션)>에 2013년 발표한 논문은 빈대 재출현이 2009년 신종플루 유행과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이 많은 새로운 공중보건 문제라는 점에 주목했다. 빈대의 위협과 해결책의 효능을 모두 언급하는 기사를 골라, 각각의 불확실성을 높고 낮은 2×2 총 4가지 경우의 수로 조작한 뒤 281명의 사람에게 읽도록 했다.
실험 결과, 빈대 위협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는 기사는 개인이 관련 정보를 찾고 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 반면, 해결책의 효능에 대한 불확실성을 언급하는 기사는 사람들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공포를 통제할 수 있는 '방어적 회피'를 조장할 수 있었다. 이는 빈대에 관한 대화나 관련 기사와 정보를 피하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빈대 퇴치가 쉽지 않더라도 가능하고, 공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 개인의 대응을 용이하게 하고 사회적으로도 확산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정부와 전문가의 위험소통과 언론에 주는 시사점이다.
빈대로 인한 건강 문제의 총체성
빈대는 다른 해충과 달리 감염병을 매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근거로 질병청은 빈대 관련 공식 통계도 내지 않고, 빈대물림 발생 시 역학 조사도 해 오지 않았다. 국내에서 2006년 이래 관찰된 빈대나 최근 출현한 빈대가 자생인지, 해외유입인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빈대물림이 가려움증, 염증, 알레르기와 같은 피부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성 질환과 그 매개체만 관리대응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캐나다 워털루대 레이철 애슈크로프트 (Rachelle Ashcroft) 교수 등 연구팀이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Health(국제공중보건학회지)>에 2015년 발간한 논문은 빈대물림으로 인한 정신건강 영향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종합한다.
총 51개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빈대물림은 일반적인 심리적 증상 또는 고통(불안, 불면, 낙인, 사회적 고립 등)에서부터 심각한 정신과적 증상(편집증, 피부 위로 지속적으로 기어가는 느낌, 자살행동 등), 나아가 정신과적 장애(기존 정신과적 장애의 악화,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빈대 박멸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방제 비용뿐 아니라 가구와 의류의 청소·교체 등 2차비용까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추가적인 심리적, 경제적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빈대로 인한 정신건강 악영향은 홈리스, 정신 질환자 등 사회경제적으로 이미 취약한 집단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기존 건강 불평등을 지속·악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빈대 퇴치만큼이나 빈대로 인한 정신건강 악영향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총체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정신건강 서비스 보장은 물론, 낙인이나 사회적 고립 방지,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저자들은 빈대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대물림으로 인한 정신건강 영향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 일화적인 데 그친다면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빈대 퇴치에 사용되는 살충제 사용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건강영향 문제도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영역으로 꼽힌다.
빈대 퇴치를 위한 사회적 방제의 원칙
▲지난 10월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지난 10월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연합뉴스
빈대 퇴치를 위한 사회적 방제가 필요하다면,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우선, 외국인 탓은 의미가 없다. 주어진 조건 하에서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사회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면 부적정 주거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통한 적정 주거로의 이전이라는 실행 가능한 정책대안이 존재한다. 빈대는 어디서나 발생하지만, 대응과 확산을 좌우하는 물리적·제도적 인프라의 부족은 부적정 주거에 집중되어 있다. 보여주기식 살충제 뿌리기는 그만하자.
방제의 효과성이나 살충제 내성 측면에서도 공적 관리와 대응이 필요하다. 관리대상 해충이 아니라던 질병청은 여론이 심상치 않자, 방제업체가 채취한 빈대 샘플을 받아 종류와 특성, 살충제 내성 등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10월 말 질병청 주관으로 관계부처 회의를 가진 뒤 한 박자 늦게 지난 3일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를 꾸렸다. 이미 각 지방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행정안전부가 총괄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방제업체를 통한 빈대 방제 비용이 매우 비싸다는 점, 빈대로 인한 대표적 건강 문제인 피부질환, 정신건강 문제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빈대 방제 비용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다. 정부가 합동으로 내놓을 대책이 빈대로 인한 건강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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