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주재 남아공 대사관 앞 넬슨 만델라 동상에 꽃들이 남겨져 있다. 2021.12.27
AP/연합뉴스
이승만은 단순히 장기집권과 독재만 한 게 아니었다. 그는 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포한 1948년 헌법의 제1조를 위반한 중대 범죄자다.
그는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저질러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국가 이념을 훼손했다. 또 선거 부정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왜곡시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여기에 더해 장기 집권과 독재로 공화국 체제의 정신까지 훼손했다. 민주공화국의 '민주'와 '공화' 모두를 살뜰히 위반한 셈이다.
현행 헌법 전문은 이승만과 투쟁한 국민들의 정신을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으로 표현한다. 여기서도 나타나듯이, 이승만은 대한민국헌법이 공인한 '불의한 자'다. 이런 불의한 자의 동상을 워싱턴의 '대한민국 영토' 앞에 세우고자 한다면, 납득될 만한 설명부터 해야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정상회담 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후임 문제를 거론한 일이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1일 자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가자지구를 관리하는 하마스와 이전부터 충돌해왔으면서도 지난달 7일의 대공습을 예견하지 못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그런 식으로 책임을 물은 셈이다.
지난 5월 9일과 11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하고 14일 가자지구가 로켓 발사로 응수하자 이스라엘이 곧바로 보복한 사례 등에서도 확인되듯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이전부터 이미 준전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도 10월 7일의 대공습을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으니, 책임론이 일어날 만도 하다.
한국전쟁도 남북 간의 충돌이 일상처럼 이어지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그랬는데도 이승만 정권은 1950년 6월 25일의 대규모 기습에 대해 사전 준비를 하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의 선조 임금처럼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전세가 역전된 것은 미군의 개입에 의해서였다. 이런 이승만을 한국전쟁 공로자로 치켜세우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이승만은 외국군의 힘을 빌려 전쟁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군사주권까지 손쉽게 내주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한국군은 독자적인 작전통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영토를 내주는 것뿐 아니라 군사주권을 내주는 것도 중요한 국가적 상실이다.
윤석열 정권과 극우세력은 한미동맹 체결도 이승만의 업적 리스트에 넣고 있지만, 이 역시 우스운 일이다. 위기 상황에서 군사주권을 내주고 외국의 도움을 청한 것이 그렇게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되는 일은 이 세상 어느 나라 역사서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역사는 이런 지도자를 보통 수준이나 보통 이하의 둔재로 평가할 뿐이다.
이승만은 K-독재의 선구자다. 재선을 위해 불법적으로 헌법을 바꾸더니 위헌적인 3선 개헌까지 강행하고 뒤이어 사실상의 종신 군주제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은 민간인 학살과 선거 부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이승만의 궤적은 박정희의에 의해 거의 그대로 답습됐다.
이승만이 개척한 K-독재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정권 출범 초기에 국민과 정권 사이의 선을 명확히 긋는 정체성 확인 작업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정권은 출범 직후인 1948년 후반기부터 친일청산을 무산시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는 정권의 정체성이 반민족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자, 이들이 의지하는 최대 기반이 국민 다수가 아닌 강대국 군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 역시 쿠데타 직후인 1961년 하반기부터 대일 굴욕외교를 추진하며 국민들의 식민 지배 청산 요구를 거부하다가 민간정부 출범 직후인 1964년부터 국민들과 대규모로 충돌했다. 이·박 두 정권은 국민 다수와 척지고 외국군에 의존하며 3선 개헌과 영구 집권으로 가면서, 국민 탄압과 선거 부정을 불사하는 K-독재의 궤적 위에서 움직였다.
윤석열 정권이 워싱턴 한국대사관 앞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면, 이는 K-독재의 원조를 미화하는 일이 된다. 이승만은 충분히 예견되는 전쟁을 방지하지 못해 기습을 당하고 외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정권을 지켜낸 뒤 외국과의 동맹에 의존하며 군사주권을 포기했다.
이런 '둔재'를 아타튀르크·만델라·처칠·간디 급의 위인들과 동격에 두게 되면, 이승만 동상 앞을 지나게 될 외국인들이 잠시나마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나라 밖에까지 설치한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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