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착한 사마리아인> (들라크루아 작품 모작)1890년,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실상 반 고흐는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 그림 속 죄없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그가 1년 3개월가량 머물고 있었던 프랑스 아를에서 떠난 직후였다. 아니 떠났다는 말은 적절치 않다. 그는 쫓겨났다. 마을 사람들이 '미치광이랑 함께 살 수 없다'며 시장에게 탄원서까지 보내며 야단법석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열심히 그림만 그리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향해 미쳤다고 손가락질만 했다. 그저 조금만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줬으면 했지만, 모두 반 고흐를 외면했다.
마치 그림 왼쪽에 등을 보이면서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은 바로 만인의 존경을 받던 사제와 경건하기로 소문난 레위인. 남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이들은 쓰러진 유대인을 그냥 지나쳤지만 단 한 사람, 유대인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만이 안간힘을 다해 그를 노새에 태우고 여관비를 대신 내주어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반 고흐는 절박한 처지에 빠진 자신 앞에도 사마리아인같이 선한 사람이 나타나 주기를, 어쩌면 그 소망을 그림 속에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젠 들라크루아, <착한 사마리아인>1849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들라크루아
그런데 눈여겨 봐야할 점이 있다. 반 고흐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따라 그리면서, 사마리아인의 외양을 슬쩍 바꾼 것이다. 붉은 수염을 기른 깡마른 얼굴의 사내, 영락없이 반 고흐 자신의 얼굴이다.
강도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을 자신과 비슷하게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 또한 어려운 처지에 있음에도 상처 입은 사람에게 친절히 손을 내민 사마리아인처럼, 반 고흐 자신도 선의를 담아 타인을 대하겠다는 다짐 아니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1889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
빈센트 반 고흐
'선의'는 인간됨의 증거
"여성들에게만 강요됐던 친절함, 저는 더 안 할래요. 근데 왜 제 마음이 이렇게 불편할까요?"라고 묻는 내 앞에 아마 반 고흐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세상에 회의하고 냉소하는 것은 너무도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잃지 않는 태도야말로 인간됨의 증거라고.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가 <예술과 문명>에서 이렇게 짚었듯이 말이다.
"13세기 수도자 성 프란체스코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아마도 '순결, 복종 그리고 빈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고, 15~16세기를 살았던 미켈란젤로에게 물었다면 '비열과 부정에 대한 경멸'이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18~19세기 초 인물인 괴테에게 물었다면 '전체와 미 속에서 사는 일이다'라고 말했을지언정 결코 '친절'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타인에 대한 '친절'이야말로, 오랫동안 인간 문명이 진보한 결과로 건져낼 수 있었던 소중한 결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친절을 놓으니 내 인격의 한 부분이 소리 없이 닳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알겠다. 가부장 사회가 휘두르는 주먹에 내가 맞았다는 이유로 내가 그동안 정성껏 가꿔온 나의 '선함'을 외면하는 건,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꼴이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만큼 친절하지 않은 것은, 남자들이 그동안 마땅히 해야 할 감정노동에 게을렀던 증거일 뿐이다. 왜 '정상성의 기준'과 '기본값'을 그런 남성 평균에 맞추어 낮춰야 하나. 오히려 달라져야 할 쪽은 남성들이다. 당연히 갖춰야 할 '사회적 예의'의 기준선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남성들은 지금부터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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