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피란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와 전쟁은 상호적이다. 이스라엘의 평화적 제스처가 1인극이 아니듯, 증오는 허공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상대의 증오에 대한 대응적 행동이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을 향한 증오 역시 자신들을 향한 증오에 대한 본능적 방어기제다. 평화와 전쟁은 국가 간 커뮤니케이션의 양극단 지점이다.
무장단체 PLO가 외교무대로 올라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대화 상대로 삼았던 것은 이스라엘의 노동 시온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슬로 협정 등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거듭난 PLO는 파타(Fatah)라는 정당을 만들고 선거를 통한 정상적 정부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 곧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내부적 요인이 파타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라면 외부적 요인은 이스라엘 사회의 근본적 변화다.
이스라엘의 극우화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국민 정서 역시 점차 극우화의 길을 향하고 있다. 줄곧 집권당 자리를 유지해 온 파타는 이스라엘의 우파 리쿠드당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2006년 선거에서 하마스 무장세력에게 제1당 자리를 내주고 만다.
현재 팔레스타인의회(PLC) 132석 가운데 하마스가 74석을 보유하며 제1당 자리를 유지하고 파타는 45석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사실상 서로 고립된 상황에서 파타는 서안지구의 다수당파를 이루고 있지만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독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압박이 커질수록 이들의 강경 목소리는 점점 거세진다.
이 배경 속에서 중동지역의 국제관계 또한 최근 급변하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2020년)으로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는 역사적 합의를 한 이후 수단, 모로코 역시 이스라엘과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이 자신을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라 판단한 이란은 일거에 판을 뒤흔들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자신들의 국가수립 목표에 버팀이 되어주던 아랍 국가들이 하나둘 이스라엘의 수교국이 되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의 외교적 차원의 희망은 이란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역시 한 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내부 사정도 팔레스타인에 점점 불리해져만 갔다. 현 이스라엘 정권에는 샤스당을 포함, 극단적 극우세력들이 리쿠드당과 함께 연정을 꾸리고 있다. 사법 리스크에 떨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자신의 사법처리로 연결될 수 있는 연정 붕괴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럴수록 소수파 극우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렇게 이스라엘 정치는 광기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7일 하마스의 자살에 가까운 전면적 이스라엘 공격의 배경이다. 이들은 특히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한 고의적 학살과 인질포획을 일삼았다. 더 이상의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 대결로 가겠다는 메시지다. 온건파의 입지를 없애면서 이 기회에 서안지구까지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을 수중에 넣겠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
2023년 가을, 세계는 중동의 데탕트를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수니파 국가들, 즉 미국과 원활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보이는 착시였다. 소집단과 국가 차원에서도 그렇듯, 국제관계에서도 늘 소외되고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는 있다. 이곳의 관리가 국제정치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침략과 민간인 학살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고 국제법 위반이다. 당연히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평화를 관리해야 하는 국제정치의 시각에서는 죄를 벌하는 차원에만 머물 수 없다. 그러기에는 벌어진 결과가 너무나 잔혹하기 때문이다. 죄와 악을 벌하기 전에 그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국제관계의 최선이다. 그것이 또한 사법과 정치의 차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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