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호가스, <백작 부인의 죽음> ‘유행하는 결혼’ 연작 중 6번째 그림, 1745년, 캔버스에 유채, 영국 내셔널갤러리
윌리엄 호가스
호가스의 <백작 부인의 죽음>은 몰락한 백작 가문의 아들과 돈 많은 상인 집안 딸의 정략결혼을 풍자한 연작 '유행하는 결혼' 중 6번째 그림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백작 부인은 변호사와 불륜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백작이 알아채게 된다. 백작은 변호사와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고, 변호사는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절망에 빠진 백작 부인은 아편을 과용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어린 딸이 엄마를 껴안으려 하고 있으나, 창백한 얼굴로 입만 힘없이 벌리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곧 사망할 것을 암시한다. 그녀에게 다량의 아편을 가져다준 장본인은 오른쪽에 엉거주춤 서 있는 하인. 검은 옷의 의사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편 통을 가리키며 하인을 격하게 나무라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지적 장애인은 누구일까? 바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리에 얼어 붙어있는 하인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만 보고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작 부인의 죽음>을 본 독일 비평가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Georg Christoph Lichtenberg)가 "그는 다른 하인들처럼 멋진 제복을 입고 있지만, 옷이 너무 크고 단추가 삐뚤게 채워져 있다"라고 설명했듯 말이다. 이 같은 외적 묘사는 지적 장애인들을 조롱하는 장치에 가깝다.
하지만 <백치라 불린 사람들>의 저자 사이먼 재럿은 "이 그림은 적어도 지적 장애인이 한 개인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눈에 띄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재럿의 이 지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지적 장애인들이 이제 곧 놀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점점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설'이라는 형태로, 다시 '바보 배'가 대규모 출현한 것이다. 이번에는 지적 장애인이 '쓸모'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는 19세기가 시작되자, 평범하지는 않지만 무해한 사람이었던 지적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졌다. 선거권이 확대되고 보통교육이 실시되면서, 사람들은 지적 장애인들의 투표 자격을 두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원한 인간형은 과학적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질서정연하게 행동하는 '적극적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우생학(優生學)이 '과학'의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생학은 인류가 열등한 유전자와 혈통 때문에 진화 상태에서 퇴보할 위험이 있다며 인종 개량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들의 눈에 지적 장애인은 진화의 실패 사례와 다름없었다. 영국의 우생학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가 1930년 다음과 같이 핏대를 세울 정도였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동이든 장애인은 모두 짐이다. 장애인을 먹이고 입히려면 국가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그들에게서 얻을 것은 거의 아니면 전혀 없다. 모든 장애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다른 곳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에너지와 선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다."
결국 우생학은 역사적인 비극을 낳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독일의 경우, 우생학 운동이 나치와 공모하면서 1933년 '유전병을 지닌 자녀 출산을 막기 위한'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지적 장애인이 강제단종 수술 대상자 명단 꼭대기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1939년 10월엔 '쓸모없는 아이들'의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했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독극물을 주사 받거나 특수시설인 '헝거 하우스'에서 아사했다. '피와 눈물'이라는 잉크가 있다면, 지적 장애인의 역사는 바로 그것으로 씌어졌을 것이다.
'탈시설' 운동이 의미하는 것
이제 우리는 '생명에 계급이 있다'는 우생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지적 장애인들을 조롱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책이 있다. 발달장애인의 엄마인 이 책의 저자 류승연은 '동네 바보 형'이라는 단어는 발달장애인을 대놓고 비웃는 말이라고 비판한다.
지적 장애인들이 상황 파악을 잘못해 엉뚱한 말을 하는 측면만 부각해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개그맨들이 지적장애인 흉내를 낼 때 꼭 흰색 콧물 분장을 과장되게 하는 등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그 옛날 우리를 숱하게 웃겼던 '영구', '맹구' 역시 지적장애인을 희화화한 캐릭터였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영구와 맹구는 적어도 시설에 갇혀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들은 강아지 '땡칠이'를 보살피며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학당에서 제일 앞줄에 앉아 적극적으로 수업 발표를 하기도 했던 '동네 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형은 더 이상 동네에 없다.
요즘 장애인권운동계에서는 '탈시설'이 화두이다. '바보 배'에 강제로 태워진 채 망망대해 속으로 더 이상은 떠날 수 없다며,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와 우리의 이웃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바보 배를 부술 수 있다면, 지적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연애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를 하고, 결혼식까지 올리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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