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관련 이미지. 비공개 청문회장에서 대답하는 모습.
유니버설 픽쳐스
공교롭게 윤석열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언급한 광복절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가 개봉했다. <오펜하이머>는 많은 관객들이 포스터와 트레일러를 보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맨해튼 계획으로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던 트리니티 실험과 2차 세계대전을 종전시킨 히로시마, 나가사키 폭격의 스펙터클을 향하고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놀란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트리니티 실험의 폭발 신을 컴퓨터 그래픽(CG) 없는 가솔린 폭발로 고속촬영과 클로즈업을 사용해서 촬영했다. 폭발 신을 극적으로 배치하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다소 무미건조하게 촬영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폭격 장면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놀란은 관객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폭격을 관람하는 것은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3백만 명이 넘는 한국 관객들이 <오펜하이머>에서 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 맨해튼 계획의 성공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 이후 오펜하이머가 냉전의 정치논리와 매카시즘이라는 정치공작에 부딪치며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즉, 영화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라는 비범한 과학자의 전기 영화인 동시에 상호확증파괴 핵균형으로 유지되었던 냉전의 기원에 관한 파편이며, 매카시즘의 남루한 마지막 페이지이다.
맨해튼 계획의 성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되었으나 원자폭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목격한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은 종전 직후부터 과도한 군사경쟁에 몰두하게 되고 종전 후 평화로와야 할 국가 간 정서는 오히려 급격하게 냉각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더 많은 핵무기, 더 강한 핵무기에 골몰했다. 결국 오펜하이머가 만든 것은 원자폭탄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냉전이라는 참담한 국제질서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혼란스러운 후회 속에서 자신이 우려했던 군사경쟁과 핵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원자폭탄보다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 반대를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트루먼 정부, 그리고 맨해튼 계획에서 함께했던 동료이자 수소폭탄을 주창한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등과 정치적으로 반목하게 된다.
당시 오펜하이머의 위치와 행위는 이미 과학자라기보다 원자력에 관한 정책가이자 정치인에 가까웠다. 몇몇 사건들로 오펜하이머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원자력 위원회 의장을 지낸 루이스 스트로스는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했던 과거를 빌미로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이며 소련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운다. 나아가 원자력 관련 분야의 활동 근거가 되는 보안 인가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청문회를 개최한다.
아무리 부정해도 답이 정해져 있는 심문. 사실 이는 청문회의 형식으로 벌어지는 마녀재판이며 빨갱이 사냥이다. 이 청문회 과정에서 오펜하이머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매카시즘과 정치적 유불리로 불리한 증언을 하는 맨해튼 계획의 동료들, 오펜하이머가 애국자임을 변호하는 아내 키티와 일부 친우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참담함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었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원자력 위원회 청문회를 통해 보안 인가가 취소되고 원자력 분야를 떠나게 되었으며 죄책감과 후회를 짊어진 과학자로 노년을 보내게 된다. 비범했던 그리고 한 편으로 도취적이고 오만했던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몰락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펜하이머를 몰락시킨 원자력 위원회 위원장 스트로스 역시 1959년 상무장관 상원 청문회에서 매카시즘을 이용해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자로 모함한 것이 폭로되어 상원의원 인준에 실패하고 정치인으로 다시 재기하지 못하는 지경으로 몰락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매카시즘이라는 얄팍한 반공주의를 이용해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몰락시켜 영예를 누리고 4년 뒤에는 자신이 이용했던 반공주의가 다시 자기의 목을 조여왔다는 사실이다.
2023년 한국, 다시 목도하는 '매카시즘'

▲(사진 왼쪽부터) 윤석열 한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3자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시 2023년 한국으로 돌아가자. 광복절 3일 뒤인 8월 18일 메릴랜드의 캠프 데이비드에 한·미·일 정상이 모여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정상회담의 주요한 내용은 안보 방위에 관한 공동 선언이었다. 한국 언론들은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야당과 여당의 평가를 각각 전달하는데 그쳤지만 외신들은 이 선언을 명백한 '신냉전'의 증거이자 작용으로 평가했다. 윤 대통령의 특별한 광복절 경축사는 한·미·일 정상회담에 함께 참여하는 기시다 총리와 일본을 위한 작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광복절 열흘 뒤인 8월 25일에는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독립 영웅들의 흉상 철거 이유에 대해 홍범도 장군을 가리켜 "이분들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라면서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레닌의 소련에 지원을 받기 위해 공산당에 가입했던 사실을 두고 레닌의 공산당과 북한이나 스탈린의 공산당을 구분하지 못한 이 장관의 발언과 국방부의 입장은 국민적인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육군사관학교는 8월 31일 후안무치 격으로 김좌진·이범석·지청천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은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하고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학교 밖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독립 영웅이라도 공산당이라면 무덤에서 끌어내 모욕하는 2023년 한국에서 목도하는 매카시즘. 오펜하이머가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했었다는 이유로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보안 승인 심사 청문회에서 보안 인가가 거부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9년 전인 1954년의 일이었다. 앞에서 본 루이스 스트로스의 몰락과 같이 윤석열 정부의 매카시즘이 언제 다시 스스로의 목을 조이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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