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으로 발표하는 최자영 전 교수.
김종성
물론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의 차이는 엄연히 크다. 그가 말한 것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제약하는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유신헌법이나 현행 헌법이나 오십보백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선언한 현행 헌법 제1조에 관해 그는 "권력의 원천이 어디인가를 지적하고 있을 뿐, 그 권력을 누가 행사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국민은 대의할 위정자를 선출할 뿐, 직접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고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말한다. 현행 헌법에서 국민의 위상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직접 참정을 크게 제약한다는 점에서 유신헌법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헌법이 국민의 직접 참정을 제약하다 보니, 국민의 불만을 적시에 반영하는 데도 한계를 보인다고 그는 언급한다. 지금처럼 꼭 필요할 때에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단들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 직접 결정권이 거의 없고 대통령·국회의원·국무위원 등에 대한 탄핵발의권도 국민에게 없다", "국민투표 부의권은 대통령만 가지고 있고 국회에도 없다"며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국회와 국민도 국민투표 부의권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래야 이번 같은 상황에 신속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자영 전 교수의 지적대로 국민들이 정부의 잘못에 대해 즉각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까지 함부로 중요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들이 불만을 품더라도 총선이나 대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고,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막아두면 선거와 선거 중에도 국민의 의사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독재와 파행이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득권층은 중우 정치의 위험성을 말한다. 대중은 어리석다는 명제를 내세우며 지혜로운 소수가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어리석은 우리 국민들은 '지혜로운 윤석열과 그 측근들'만 쳐다보며 계속 학수고대할 수밖에 없다.
최 전 교수는 설령 잘못된 결정이 나오더라도 국민의 뜻에 맡기는 게 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국민이 다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하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가 된다"는 김영호 통일부장관 등의 발언은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그는 강조한다.
강의 중에 최 교수는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을 환기시켰다. 대중은 무식해서 안 된다며 소수 엘리트들이 오랫동안 고심해 결정을 내린다 해도 그들의 장고가 악수를 낳기 쉽다고 말한다. 대중의 직관적인 결정이 오히려 더 지혜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최자영 전 부산외대 교수
최자영
87체제를 손봐야
최자영 전 교수의 지적처럼, 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 외교와 오염수 방류 방조는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의 불만이 이 정도까지 됐는데도, 국민들이 또다시 들고 일어서기 전까지는 위기와 문제점을 치유할 길이 막막하다. 윤석열 정권은 반국가 세력에 대한 대응을 운운하면서 국민들이 일어날 가능성을 봉쇄하려 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굳이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제때 올바로 반영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형식적으로는 분명히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국민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나라가 되어 있다. 국민들의 분노가 쌓이고 쌓여 부마항쟁이나 6월항쟁 같은 일이 일어나야 문제가 조금 해결되는 수준이니, 국민들의 의사가 제때 올바로 반영되는 게 아니라 한참 있다가 찔끔 반영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자영 전 교수는 현 위기를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길은 87체제와 한국 민주주의를 손보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당장의 현안인 대일 굴욕 외교와 후쿠시마 문제 등에도 대처하면서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수정 작업까지 함께 해나가야 할 과제가 한국인들의 앞에 놓여 있다. 윤석열 정권이 우리에게 두 가지 짐을 지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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