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옥 <한 번은 불러 보았다> 책 표지
위즈덤하우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정회옥 교수가 쓴 <한 번은 불러 보았다>(위즈덤하우스, 2022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불러대는 이방인에 대한 호칭이 얼마나 깊은 차별적 고정관념에 물든 것인지 낱낱이 보여준다.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고 주요 꼭지 제목만 살펴봐도 우리 속에 공유된 고정관념을 인정하게 된다.
'흑인보다 낫지만, 백인보다는 모자란' 자화상을 우리는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인)에 대한 특별의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은 것 같다.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일본도 개화기 때부터 자신들은 똑같은 아시아인이 아니라는 자부심이 많았다(탈아론<脫亞論>). 우리도 어느새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동남아는 물론 중국과 같은 아시아 나라가 아니다'라는 자존심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보면 지금 정부에서 목숨 걸고 추진하려는 '해양문명론-한미일 가치동맹'도 비슷한 생각의 정치판 버전인 것 같다.
2부 큰 제목이 <멸칭의 행간: 피부색, 민족, 경제력, 종교>이다. 우리는 '노란 피부 하얀 가면'을 쓰고 '백색 신화'에 빠져 있다. 그래서 '개인을 집단으로 뭉뚱그리는 반흑인성'을 가지고 피부가 검으면 그냥 '흑형'이라고 부른다. 10여 년 전쯤 어느 TV 프로그램을 본 장면이 생각난다. 아프리카 어느 원시 부족을 찾아가 촬영했다.
그런데 그 카메라 앵글은 원시 부족 앞의 문명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정말 거침이 없었다. 특히 그곳 부인네들이 반나체로 다니는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내보냈다. 우리나라나 소위 문명사회라는 곳에서라면 그런 장면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결국 찍는 이나 보는 이나 창 들고 수렵 채집하는 아프리카 원시 부족은 사람(문명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슷해서 더 싫다 - 짱깨'다. 우리에게 지금 익숙한 장면이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순수한 단일민족 신화에서 비롯된 혼혈인 배제의 호칭인 '튀기'가 있다. 내가 어린 시절 1970년대에 대표적인 혼혈 가수 둘이 생각난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튀기'라고 불렀다. 그런데 같은 혼혈이라도 흑인 계통의 곱슬머리 가수는 무시당하거나 불쌍하게 여겨졌다면, 백인 혈통의 큰 키와 수려한 외모의 '윤수일'은 오히려 한국인도 갖지 못한 비주얼로 부러움을 샀다.
돈 벌러 와서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사람으로 상징되는 '똥남아' 이주노동자는 우리의 밥처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기독교인의 대표적 혐오와 차별 대상인 '개슬람'(이슬람)도 빠질 수 없다.
차라리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어서 싫은 것은 덜 위험할 수도 있으나, '괜히 싫다'는 마음은 정말로 위험한 것이다. 괜히 싫은 마음에는 필요하면 무엇이든 얹어서 마음껏 혐오하고 미워해도 좋은 정당화가 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그들의 외견만 보더라도 그들이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고, 종종 유감스럽게도 눈을 감고 있어도 그걸 느낄 수 있다. (…) 냄새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그들은 의복도 더러웠고 모습도 늠름하지 못했다."(나의 투쟁- 상권, 히틀러, 서석연 옮김, 범우사, 2001년, 99쪽)라고 썼다. 그리고 10여 년쯤 후에 실제로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세상에 그 누구도 편견과 잘못된 습관 없이 사람을 대하기는 어렵다. 항상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로 판단한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사람은 늘 그런 선입견으로 대하고, 이유 없이 싫어하는(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 고정된다면 '나도 중증이구나' 생각하며 서둘러 고쳐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똑같은 판단을 나도 받게 되어 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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