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스캔들로 인해 싱가포르 정부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제목의 <이코노미스트> 기사. 부패행위조사국의 독립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보도 화면
해당 기사에 싱가포르 정부는 발끈했습니다. 영국 주재 싱가포르 고등판무관은 <이코노미스트>에 서한을 보내서 기사 내용에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장관에 대한 수사이기 때문에 총리에게 동의를 구하기는 했지만 수사에 허가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부패행위조사국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수장에 대한 임명 또는 해임에 대한 보호 장치도 있다는 것이 싱가포르의 설명입니다.
기사에 대한 해명만으로 싱가포르 정부의 분이 풀리지 않았던 걸까요? 영국의 경찰청장 역시 내무부 장관의 임명을 받는데 그것 역시 독립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냐고 되물으며,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 순위를 보면 싱가포르는 세계 5위인데, 영국은 18위라는 말로 서한을 마무리했습니다.
유능하고 청렴한 걸로 알려진 싱가포르 공무원 사회에 이례적으로 부정과 부패, 막말과 불륜이라는 희대의 스캔들이 한꺼번에 터진 상황입니다. 이에 대한 민심은 정부에 비판적이고 차기 총선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분석도 있긴 하지만 싱가포르 국민들은 여전히 부패행위조사국의 수사에 신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영국 시사주간지의 도발에 싱가포르 정부가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것 역시 지금까지 부패행위조사국을 중심으로 한 싱가포르 정부의 부정부패 해소 노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사를 마무리하던 중에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을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한국의 공수처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 최근에 <연합뉴스>에서 내 놓은 "구속영장 '3전 전패'…수사력 물음표 못 떼는 공수처"라는 기사가 눈에 띕니다. 공수처 출범 후 3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수사 하나 못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보도가 아니더라도 공수처가 이제껏 뭘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장관들이 호화주택에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살고 있는 걸 두고 누군가가 특혜나 부당 이익 등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했을 때 싱가포르는 부패행위조사국을 내세워 조사를 하고, 그 결과는 온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보고서 형식으로 발간되어 국민에게 공개를 했습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고속도로 종점이 변경되고 그로 인해 대통령 일가가 큰 수익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의혹에 대해 공수처가 수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다.
수해가 발생하자 인명사고 현장을 찾는 대신 본인 소유의 땅을 먼저 살피고, 해당 지역에 대한 정비사업을 우선 진행하는 김영환 충북지사나, 재건축을 통한 시세차익과 해명이 어려운 배당금 수익 등에 의혹이 모이고 있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같은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검찰, 경찰, 공수처 중 어디에서도 먼저 나서서 의혹을 조사해서 국민에게 보고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부정부패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부정부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부정부패를 척결하거나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에는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들이 대는 부패행위수사국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 공수처는 존재감 자체가 희미하고, 검찰과 경찰은 야당 정치인의 치부에만 선택적으로 법의 잣대를 갖다 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제투명성 기구에서 조사하는 부패인식지수. 한국은 박근헤 정부였던 2016년에 바닥을 찍고 문재인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입니다. 올해는 어떤 결과를 받게 될까요?
국제투명성 기구
앞서 싱가포르 정부가 인용한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싱가포르는 세계 5위인 반면, 한국은 아직 31위입니다. 지난 10년의 변화를 보면 박근혜 정부 당시 매년 뒷걸음질을 치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개선되어 2022년에 최고 성적을 받은 게 이 정도 수준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보면서 전 개인적으로 당분간은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부패하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상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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