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사고 발생한 인천 아파트 건설 현장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 국토부가 LH 발주 아파트 중 철근이 누락된 단지 15곳을 공개하면서 '순살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정부로서는 시민들의 불신과 불안이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 2021년 6월 광주 학동 현대산업개발 철거 건물 붕괴사고, 2022년 1월 광주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외벽 붕괴사고에 이어 이번 GS건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 이르기까지 대형건설사에서 연달아 사고가 났다. 늦었지만 국토부가 직접 조사에 나선 것 자체는 변명과 해명으로만 일관했던 과거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지금 국토부는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에게 최고 수위의 패널티를 주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하는데, 그럼 국토부는? 우리나라 건설산업 전반을 관리하고 정책과 제도를 이끌어가는 것은 국토부 아닌가. (원희룡)국토부 장관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본다."
- '순살 아파트'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보나.
"너무 어이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솔직히 뭐라 말하기가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건설 산업 전체가 병든 것 같다. 다만 LH 전관 특혜에서 보듯이, 건설 관료들 사이에 도덕적 해이가 상당히 오랜 기간 노골적으로 누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LH, SH, 도로공사,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 공공 발주 기관에 낙하산이 꽂히면 어떻게 될까?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나도 해먹자'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단적인 예가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있었던 2019~2020년 사이 벌어진 LH 직원들의 땅투기 사태다.
'윗물'인 관료 사회부터 이렇게 썩었는데, 그 아래 건설산업 현장은 어떻겠나? 그러니까 나는 회의적이다. 지금 당장은 LH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지만, 안타깝게도 전관 근절 방안이 나오거나 LH 같은 공공 발주자에게도 부실 시공 책임을 묻는 식의 법·제도 정비까지는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왜? 국토부 등 부처 관료들도 언젠가 은퇴할 거고 LH처럼 전관으로 취업해야 되니까. 책임감 갖고 뭐라도 고쳐보겠다는 사람은 없고 어떻게든 '이너서클' 들어가서 잿밥이라도 먹겠다는 분위기만 만연하니까."
- 관료 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구체적으로 건설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 정도 사달이 났는데 지금도 업계에서 '죄송하다' 소리 하나 안 나오고 조용하지 않나. 건설 산업이 정상이라면 대형건설사들이 모인 대한건설협회나 설계협회, 감리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1차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들이 모인 협회)에서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라도 불량 업체와 일 안하겠다고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닌가? LH 노조는 왜 반성한다는 말 한마디 없나? 이런 주류 전문가 집단들이 죄다 입을 싹 닫아버리니까 다른 전문가들도 입을 못 연다. 온갖 다양한 얘기가 나와서 토론하고 신뢰 회복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인데 그게 안 되고 있지 않나. 다들 눈치나 보면서 밥줄 끊길 걱정만 하는 거다.
오히려 각 협회들은 이런 붕괴사고를 이용해서 자기 잇속만 챙기려 든다. 설계협회는 그동안 설계비가 적었다면서 올려달라고 하고, 감리협회는 감리비 올려달라고 하고, 대한건설협회는 시공비가 부족했다고 할 거다. 전문건설협회는 불공정 하도급 때문이라면서 해결해달라고 할 거다. 아무도 잘못했다 하지 않고 돈만 생각하니 답이 없는 것이다. 정말 답답하다. 사실 나도 본업이 건설 계통이기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502명 사망한 삼풍백화점 터에 또 초고층 짓는 '탐욕' 사회... 중대한 시점"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공학박사·기술사)
김성욱
- 국토부가 LH 발주 외 민간 발주 아파트들에 대해서도 철근 누락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발주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할 거라는 예상들이 나온다.
"민간 발주 아파트가 훨씬 심각할 거다. 건설 산업 전체의 70%가 민간 발주, 30%가 공공 발주다. 공공 발주는 그래도 LH 같은 공공기관이 감리를 선정하고 관리하지만, 민간의 경우에는 감리가 시공사의 허수아비다. 왜? 사실상 감리사의 월급을 시공사가 주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 아이파크가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다. 심한 경우 힘들게 하는 감리가 있으면 시공사가 감리사에 압력을 넣어 잘라버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게 힘들면 교묘하게 왕따 시키고."
- 시민들 입장에서 2023년 대한민국 신축 아파트에 철근이 빠져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것은 황당하다. 한국 건설이 뒤로 가고 있는 건가.
"옛날 아파트가 더 튼튼하다는 시쳇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건설은 크게 재료, 사람, 장비다. 재료는 값싼 철근 등 중국산을 쓴다. 사람도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사람을 쓴다. 그저 장비만 우리나라 장비다. 이걸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할 수 있나? 이러니 아파트 수명이 20~30년 밖에 안 되고 금방 다 재건축해야 되는 지경인 것이다."
- 이렇게 된 이유가 뭔가.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탐욕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전관도 쓰고, 외국인 더 들어오게 해달라고 로비도 하고. 조금이라도 남기려고 모든 걸 싸게 가고. 그런데 과연 건설사들만의 탐욕이냐는 것이다. 이 사회는?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무려 502명이 죽었다. 근데 그 자리에다 뭘 했나. 또 초호화 초고층 아파트(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올렸다. 위령비 하나 없이. 위령비는 한참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 구석에 있다. 이게 제정신인가. 기억하지도 않겠다는데 무슨 문제를 개선하나."
-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직접시공제를 주장한다. 원청 건설사들이 지금처럼 하도급사에 도면만 던져준 채 알아서 지으라고만 하지 말고, 원청이 직접 근로자들과 근로계약을 맺고 공사를 수행해야 한다. 사람 일이 다 똑같은 게, 다른 사람한테 외주 줘놓고 관리만 하면서 '잘 됐냐?' 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보다, 내가 직접 내 이름 걸고 일을 하면 한번이라도 더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GS건설이 직접 근로자들 데리고 시공했다면 검단 지하주차장이 무너졌을까? 현대산업개발은?
적어도 구조체의 안전과 직결되는 기초나 골조 공정에 한해서라도 직접 시공제를 시작해야 한다. 대기업 임원들과도 만나서 이 얘기를 해보면 맞다고 인정한다. 근데 '이젠 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시공 안 하고 하도급 관리만 했더니 이제는 정말 인부들 데리고 직접 공사할 능력을 잃어버린 수준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 굴지의 건설사들 현실이다. 계속 이렇게 갈 건가.
최근 연속된 붕괴 사고를 보면서 하인리히 법칙(1건의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29번의 작은 사고와 300번의 이상 징후가 선행한다는 법칙)이 떠오른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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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철근공 "아파트 철근, 20~30년 전의 반만 넣고 있다" https://omn.kr/250k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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