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화 안 내는 남자와 화 잘 내는 여자>, 1935년경, 종이에 목탄과 연필. Licensed by ARS, NY - SACK, Seoul
2023 Heirs of Josephine H
그러나 조는 이 같은 호퍼의 조롱과 폭행에도 그의 곁에 남는다. 한 차례 폭력이 지나간 뒤에 호퍼가 먼저 슬그머니 그녀를 팔로 껴안으면, 조는 '싸움이 싫어서' 마음을 풀곤 했다.
아예 조는 자신이 당하는 폭력을 남들과 비교해 상대화한 후 사소한 일로 만들기도 했다. 조가 1960년 3월 1일에 쓴 일기는 자신이 폭력 가정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스스로 설득한 흔적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 내가 싸우는 것은 얼마나 나쁜 일인가. (...) 호퍼가 상기시켜 주는 대로 그는 (다른 나쁜 남자들처럼) 술을 마시지 않고 난잡한 여자를 쫓아다니지도 않는다."
도대체 조는 왜 호퍼의 폭력을 합리화 했던 걸까. 아니, 조 뿐만이 아니다. 맞고 사는 아내들 중 상당수는 남편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애쓴다. 이상한 일 아닌가? <여자는 인질이다>의 저자 디 그레이엄 미국 신시내티 대학 심리학 교수는 이 같은 심리를 놀랍게도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설명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 인질로 붙잡혔던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특이한 심리기제 때문에 생겨난 용어다. 당시 은행직원 4명이 6일간 억류돼 있었는데, 이들은 그 강도에 대해 적대적이기는커녕 도리어 편들어 주고 심지어 사랑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왜였을까. 인질극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저자 주디스 허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립되어 가면서, 피해자는 생존이나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뿐만 아니라 정보, 심지어 정서적 지지를 위해서 가해자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오직 하나의 허용된 관계 즉 가해자와의 관계에 더욱 매달리고, 가해자에게서 인간성을 찾으려고 애쓰게 되며 가해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스톡홀름 증후군은 정신적 외상에 의해 생겨난, 비정상적 유대심리인 셈이다.
어쩌면 조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전형적인 희생자였을 지도 모른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고통에 적응하는 다양한 전략을 발달시킨다고 한다. 조는 자신이 당한 폭력을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가정을 떠나야 하는 더 큰 문제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조는 호퍼의 폭행이 시작될 때마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물었다"라고 술회한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를 무력한 피해자로 정체화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도 같이 때린다, 그러므로 동등하다"라는 주장은 그것 자체가 상대적으로 약한 자신의 반격을 똑같은 공격으로 여기는 '방어 기제'일 가능성이 높다. 학대자와 친밀한 관계일 때, 가해-피해 관계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호퍼의 아내로만 살다 죽은 조
<아주 친밀한 폭력>에 따르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남성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그가 가진 권력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호퍼는 조의 내조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호퍼는 스스로 끼니마저 해결할 수 없는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원할수록 권력을 느끼는데, 결국 이 권력을 향한 욕망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자를 위해 소진하는 길을 걷도록 만든다. 조가 그랬다. 그녀는 결국 호퍼의 아내로만 살다가, 호퍼의 아내로서 죽었다.
어쩌면 '나의 남편은 여성에게 폭력 따위 쓰지 않는 신사적인 남자'라고 우쭐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신사적인 남편 역시 분명 다른 남자가 여자에게 행하는 성폭력으로부터 무형의 이득을 본다.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스톡홀름 증후군'의 포로이기에, 굳이 폭력까지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남편 '달래기'와 '기 세워주기' 같은 감정 노동 제공하기, 시댁 일에 봉사하기, 남편보다 가사노동을 자발적으로 더 하는 것 등의 현상들은 여자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의 희생자임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소설가 박완서는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람 밑에 종이라는 족속이 따로 있었을 적에도 주인을 잘 만나 사람 대접받는 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명의 종 중 9명이 주인과 겸상을 해서 밥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학문을 익혔다고 해도 단 한 명의 종이 다만 종이라는 이름으로 박해받는 게 정당한 사회에선 그 9명의 종이 단지 특혜를 받고 있을 뿐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 '특혜'라는 것은 정당한 권리가 아니기에, 그걸 베푼 쪽에서 언제 빼앗아가도 항의할 수 없다. 바로 그것이 "솔직히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 이해 못 하겠어요. 스스로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건 혼자 살 능력이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라는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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