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5 17:15최종 업데이트 23.08.0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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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넘쳐 나는 시대, 당신에게 딱 맞는 책이나 영화, 노래를 배달해 드립니다. 좋은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난 네게 반했어 챌린지'는 다음 필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연재입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주세요.[편집자말]
브로콜리너마저
브로콜리너마저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왼쪽에서부터 류지, 덕원, 향기, 잔디. 향기는 2020년에 탈퇴했다.스튜디오 브로콜리
 
벌써 지난해의 일이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연말공연에 갔다. 여유 있게 도착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티켓을 받고 자리에 앉아 가방 속 카메라를 꺼냈다. 악기만 놓인 텅 빈 무대를 이리저리 당겨가며 찍었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휴대폰을 꺼내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상했다. 잡히는 게 없었다. 바닥에 내려놨던 롱패딩 주머니를 샅샅이 뒤지고, 의자 밑을 살펴보고, 가방 안도 확인해 봤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공연이 곧 시작될 것 같았다. 한동안 허둥대던 나는 끝나고 찾자는 생각으로 수색을 멈췄다. 불이 꺼지고, 찝찝한 마음으로 공연이 시작됐다.

사라진 휴대폰, 그리고 시작된 공연
 
<좋았었던 날은>이 들어 있는 앨범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표지
<좋았었던 날은>이 들어 있는 앨범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표지비스킷 사운드
 
멤버들이 한 명씩 무대로 들어서고, 덕원님이 어쿠스틱 기타를 잡았다. 무대에서 나의 통화연결음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잃어버린 휴대폰 때문에 시끄러웠다. 나를 안심시키려 거는 최면과 속절없이 피어나는 걱정이 싸우고 있었다. '내가 정신없는 사이 옆 사람이 훔쳐 간 건 아닐까?' 생사람까지 잡아보는 사이, 공연은 어느덧 중반부로 접어들었다.

멤버들이 옷을 갈아입고 무대 앞쪽 소파에 앉았다. 초창기 음악부터 메들리로 들려주던 멤버들은 한 명씩 연주를 멈추고 소파에서 일어나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분명 아직 안 부른 노래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이것으로 끝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문득 이게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이 공연의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의 끝.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고, 이제 브로콜리너마저는 해체한다"라고 발표할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이들이 끝을 준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날이 내 앞에 성큼 다가온 기분이었다.


다행히 덕원님이 아무 말 없이 노래를 이어갔고, 곧이어 조명이 류지님에게로 넘어갔다. 노래를 부르는데, 처음 듣는 노래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뭐지, 이 노래는?' 자세히 들어보니 원래는 덕원님이 부르는 <좋았었던 날은>이었다. 마스크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도록 펑펑 울어버렸다. 2년 전 여름, 공연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처럼.

우리 좋았었던 날도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바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좋았던 날을 모두 두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네/ 휘청이며 마음만은 앞선 채로 모두 잡아두려 했던 건 나의 욕심이었을까/ 나를 비껴 세울 수도 없는데 무슨 사랑을 말해 위로를 말해/ 우리 좋았었던 날은 모두 두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네 

그때 이 노래는 아직 음원으로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가사도 모르고 듣는데, 한 소절 한 소절이 또박또박 박혔다. 그 여름 나는 너무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리라 생각한 일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이 완벽한 날들이 언젠가 깨져버릴까 봐 불안했다. 하지만 애를 써도 끝은 기어코 찾아왔다.

건강 계단의 역설
 
시민들이 서울시가 설치한 '기부하는 가야금 건강계단'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시민들이 서울시가 설치한 '기부하는 가야금 건강계단'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가끔 지하철역 같은 데에 보면, 건강 계단이라는 게 있다. 계단 면에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수명이 몇 초씩 늘어나는지 적혀있다.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택할 때가 있다. 커지는 숫자들을 밟고 올라가다 보면, 왠지 뿌듯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하다. 여기 적혀있는 게 진짜일까? 그럼 내가 계속 이렇게 계단을 오르면, 나는 수명이 자꾸만 늘어나 영원히 살 수 있는 건가?

그러나 계단을 아무리 올라도 삶은 언젠가 끝나는 법이다. 삶에 끝이 있는데 시절에 끝이 없을 순 없다. 꿈만 같은 삶의 한 계단 한 계단에도 끝은 온다.

눈물범벅이었던 공연이 끝나고, 옆 사람과 같이 다시 휴대폰을 찾았다. 정말 어디에도 없는 것 같더니, 이내 민망하게도 내 가방 깊숙한 곳에서 네모난 물체가 잡혔다. 나도 모르게 거기 넣어둔 모양이었다.

잃어버린 휴대폰처럼 난데없이 나타나는 추억이 나를 괴롭히는 날이면, 좋았던 시간을 너무 자주 꺼내 본 탓에 힘들었던 시간까지 줄줄이 달려 나오는 날이면, 나는 <좋았었던 날은>을 듣는다. 한 시절로부터 돌아서기 위해서는 때로는 좋았었던 날을 모두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함을 곱씹으면서.

* 다음 필자는 김은비(은물) 작가입니다.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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