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과 <이순자 자서전 - 당신은 외롭지 않다>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권우성
한국 현대사에서 육영수를 가장 많이 흉내 낸 인물이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다. 육영수의 이미지가 박 정권에 영향을 주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전두환 부부 역시 제2부속실의 효용에 주목했다.
이순자는 자서전인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제2부속실에 보좌관 3명을 둘 수 있었지만 자신은 2명밖에 두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실수를 피하고 꼭 해야 하는 일만 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던 나는 보좌관을 세 명씩이나 두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라고 한 뒤 "제2부속실로 들어오는 모든 민원 사항도 반드시 대통령 비서실과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등 안전제일주의를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2부속실의 도움을 받아 내가 치러야 했던 공식 행사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영빈관에서의 행사였다"고 말했다.
이순자는 제2부속실이 치른 공식 행사만 언급하고 '비공식 행사'는 거론하지 않았다. 제2부속실을 안전제일주의로 운영했다는 그의 진술을 무색게 만드는 '비공식 행사'는 한둘이 아니었다. 제2부속실이 비자금 창구가 됐다는 의혹을 받은 것이 그중 하나다.
1984년에 이순자가 이사장 자격으로 설립에 참여한 새세대심장재단은 전두환 집권기에 300억 원 상당의 기부금을 받았지만, 심장병 수술비로 지원된 70억을 제외한 나머지 돈의 행방은 묘연했다. 묘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989년 1월 13일 국회 5공 특위(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장동열 새세대심장재단 사무국장의 진술에서 나왔다.
다음날 발행된 <경향신문>은 장동열 사무국장이 새세대심장재단의 기금 모집과 관련해 "청와대 접수분 1백 99억 원 중 1억 원 이상은 이순자 씨가 직접 받았고, 1억 원 미만은 제2부속실에서 접수했다"고 증언했음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청와대 접수 장부는 이씨가 직접 보관했다"는 증언도 함께 소개했다.
이순자가 청와대 장부를 직접 관리하는 가운데, 1억 이상은 그가 직접 받고 1억 미만은 제2부속실을 통해 받았다. 제2부속실이 접수한 돈 역시 당연히 이순자 수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순자는 소극주의적 태도로 제2부속실을 운용했다고 진술했지만, 실제로는 적극주의적 태도로 이 부서를 활용했던 것이다. 육영수뿐 아니라 이순자 때도 제2부속실은 영부인을 견제하는 곳이 아니라 영부인의 수족이 되어 영부인을 강화시키는 곳이었다.
제2부속실 같은 제도적 장치가 대통령 부인을 견제하는 효과를 낳을 수는 있지만, 육영수·이순자 사례는 그런 장치의 위험성도 함께 보여준다. 자신의 영역과 남편의 영역을 제대로 분간하지 않는 영부인이 출현하면 제2부속실이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는 역기능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점을 두 사례가 증명했다.
대통령 주변의 비선 권력들에 대한 감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상태에서 부서 하나를 신설하는 것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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