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수업을 들으며 그린 다비드 자맹의 그림 모작.
강다은
다시 취업하면 몇 년을 쉼 없이 일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구직급여가 나오는 단 몇달 간은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10년을 내다봤을 때 가장 큰 갈증을 느낀 부분에 시간을 쏟는 중이다. 그게 나에게는 운동과 취미생활이다.
마지막 직장은 퇴사 6개월 전부터 급여가 밀렸다. 급여일이 지나 100만 원이 입금되고 다음 달 급여일이 다가올 때쯤 남은 급여가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자, 그마저도 들어오지 않았다. 고용보험도 연체되어 있었다. 모아둔 비상금으로 생활비를 메우기 버거울 지경에 이르러 권고사직으로 구직급여를 받게 됐다. 밀린 급여와 연말정산, 퇴직금은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아직도 알 수 없다.
퇴사 후 바로 면접을 봤다. 현재 급여보다 세후 월 1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했다. 연봉으로 1200만 원 이상이 오르는 셈이다. 단, 연차가 없었다. 일이 생기면 허락을 구하고 조기 퇴근을 할 수 있다지만 아마 당장 병원에 갈 만큼 아프지 않고서야 용산 IMAX에서 영화를 보겠다고 쉬기는 힘들 거다. 작년까지는 토요일도 출근했는데, 올해부터 주 5일로 바뀌었다는 설명을 듣고 출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구직급여가 아니라면 바로 출근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겠지. 그 직장을 몇 달이나 다녔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복지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돌보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 그래야 오래 일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구직급여는 취업할 의사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탐색할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직장을 잃었다고 해서 지인들이 결혼식을 미루는 것도, 돌아가실 분이 좀 더 오래 사시는 것도, 태어날 조카가 몇 달 더 엄마 배에서 머무는 것도 아니다. 일상을 유지한다는 건,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떠나서 나를 둘러싼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삶은 정말 사소한 것들로 가득하고 지루하며, 말도 안 되게 허무한 이유로 허물어진다. 그러니까 구직급여는 퇴사한 직장인들이 얌체처럼 빼먹는 돈이 아니라, 노동 의지는 있으나 일터가 없는 사람을 통해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돈이다.
돈이 도는 과정에서 실업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애초에 구직급여의 목적이 그렇지 않은가? 악용하는 일부 사례를 전체인 양 떠벌리고 결국 구직급여 제도를 폐지해서, 그렇게 아낀 돈이 향하는 곳은 결국 어디인가. 어떤 사회를 만드는 데 쓰려는 건가. 만들고 싶은 국가라는 게 있긴 한가.
그럼에도 이력서를 낸다
채용 공고만 보고도 내게 맞는 직장을 선별하는 눈이 생기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슬프게도 대부분 노동의 맛은 먹어봐야(겪어봐야) 알 수 있다.
퇴사 후 갖는 휴지기는 버린 미각을 되찾기 위해 잠시 입을 헹구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샤넬 선글라스를 쓰든 70% 할인하는 청광차단안경을 쓰든 해외여행을 가든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그 삶을 지속할 의지다. 맥락은 문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삶에도 존재하고, 어떤 재화나 경험의 가치는 당사자의 삶의 맥락에서 파악할 일이다. 내 삶의 맥락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스스로가 선택할 일이지 타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분노하지만 오늘도 이력서를 내고, 내일은 면접을 봐야지. 부지런히 면접 봐서 일을 구하고, 근로해서 4대보험을 내야 은퇴하고 쥐꼬리만 한 연금이라도 받겠지. 역사를 통해 배운 건, 어떤 시대나 권력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거다. 거센 파고 속에서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아남는 게 먼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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