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1일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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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 시기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원칙 있는 대일외교를 전체 부정하는 태도는 이러한 구조와 역사를 무시한 것이어서 우려되었다. 우려대로 윤석열 정부 1년의 외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짜 평화'로 규정하고, 한·일관계 대전환의 노력을 '죽창가'에 비유하여, 이 두 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데 집중했다. 그러고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정상화'하는 데 올인했다.
윤석열 정부의 '정상화'는 한·일 관계에 앞서 국방안보 분야에서부터 먼저 개시되었다. 2022년 7월 22일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축소·조정·폐지된 전구급(戰區級) 연합훈련 부활 방침을 보고하고 한미연합훈련 '정상화'에 돌입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속에서 중단하거나 축소했던 전구급 연례 한미연합연습, 키리졸브, 독수리,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등을 '정상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더해 림팩(RIMPAC : Rim Of The Pacific Exercise, 환태평양 훈련)에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훈련단이 참가했으며 이에 연결해서 실시하는 '퍼시픽 드래곤'에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와 함께 참가했다. 그 성격도 공세적인 것으로 변화했으며, 일본을 포함한 '한·미·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맞대응이 일상화되었고, 중국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부인하고 개시한 국방안보의 '정상화'에 이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시도했다. 지난 3월 이후 한·일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1965년 체제의 부활이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답방으로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의 숨은 그림은 안 보였다. 3월 16일의 정상회담에서 주목받았던 강제동원 문제는 3월 6일에 발표한 정부 해법을 확정한 내용이었고, '구상권 포기'까지 밝히면서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 하는 방법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를 '국익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1965년 체제에 장착되어 집요저음(執拗低音, 한 번 제시된 테마가 끊임없이 반복됨)으로 작용해 왔던 '과거사-안보' 교환 구조가 부활했다. 즉 과거사를 봉인하고 경제 협력을 매개로 한·일 관계를 안정화하여 한·미·일 안보 협력체제를 구축, 작동시키는 구조가 복원된 것이다. 동시에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지구적 탈냉전을 배경으로 새로 구축되던 '역사화해-평화구축'의 연동 구조가 붕괴했다.
이후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가 부활돼 강화되고 있으며, 그 반대 급부로 북·중·러의 진영화가 초래되고 있다. 그것은 신냉전으로의 진입이라기보다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전면 부활이며, 그에 조응한 샌프란시스코조약 체제 및 한·일 1965년 체제의 부활 강화다. 한반도 탈냉전을 완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이하고 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대립, 갈등, 분단의 현실은 신냉전이 아니라 냉전의 지속일 뿐이며, 그 동북아적 변형인 정전의 전면화일 뿐이다.
한편 두 차례의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식민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원칙적 입장을 봉인한 이면에서 그동안 봉인되었던 일본의 '지정학'이 부활했다. 2022년 9월 27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가 장례에서 그 징후가 보였다. 아베 국장에 참가한 한덕수 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라고 하여 일본 측 인식을 수용했다.
그날 국장에서는 스가 전 총리가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심정에 빗대 추도사를 읽었다. 야마가타는 주권선(主權線) 이익선(利益線) 개념으로 구성되는 일본 지정학을 창안한 사람이고, 이토는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할 때까지 이를 실행에 옮겼던 당사자다. 국제법은 이들이 한국을 길들이는 유효한 수단이었고 국제법으로 그 침략 행위를 포장했다.
'극동 1905년 체제' 용어 등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가 5월 31일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보고를 받은 후 도쿄의 집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교도통신=연합뉴스
스가 전 총리의 이와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아베 내각 시기부터 이미 부활의 징후가 보이던 지정학적 구상이 있다. 기타오카 신이치와 호소야 유이치 등의 '새로운 지정학' 그룹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새로운 지정학'에서 한국은 배제의 대상이다.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문제에서 '자기 주장'을 전개하며 국제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기타오카는 일본 주도의 '서태평양 연합' 구상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도 한국은 제외되어 있다. 한국은 조약, 선언, 합의를 지키지 않는 국가이며, '법의 지배'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다가 2022년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자 '극동 1905년 체제'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극동지역 질서를 둘러싼 전전과 전후의 연속성에 주목하면서 '미·일-한·미 양 동맹'의 구축이 현실로 존재하는 질서라고 진단하고, 그 기원을 러·일 전쟁 결과로 체결된 포츠머스조약에서 찾는다. 조선, 대만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편에서 대국들의 사정에 따라 소국들의 희생 위에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것이 당시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라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나아가 올해 3.6 정부 해법이 제시되어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가시적으로 긴밀해지자,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과 관련해 일본이 한미연합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행위자로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본의 '새로운 지정학' 구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의 안보론자들은 "국제법 무시의 선제적 공격 개시라는 분명한 '악'과 이에 저항하는 명백한 '선'의 대립"이 이 전쟁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본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전쟁 할 수 없는 나라'여서는 곤란하다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 전선에 안드리 구렌코, 안드리 나자렌코 등 주일 우크라이나인들이 있다. 특히 이들 두 명의 안드리는 혐한의 진원지인 국가기본문제연구소, 도라노몬 뉴스 등 일본 우익이 제공하는 강연장이나 매체를 중심으로, 러·우 전쟁을 교훈 삼아 일본인이 개헌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편 2022년 6월 샹그릴라대화(아시아 안보회의) 기조 강연에서 기시다 총리는 일본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계속할 수 있는가, 아니면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이 일어나는 가운데 (중략)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는가"의 선택지 앞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과 주장이 일본에서 2022년 12월에 채택된 '국가안보전략' 문서에 반영되어 있다.
작년 말에 한국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여기에 우리 국익을 동기화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강제동원 문제는 '돌덩이' 치우듯 대일외교의 과제 리스트에서 삭제해버렸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추구한 종전선언을 "상대방의 선의에 기댄 가짜 평화"로 규정하고 비난했던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선의에 기댄 가짜 화해'를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여, 권위주의를 상대로 한 자유민주주의 '가치외교'에서 전사로 나서려 하고 있다.
그런데 러·우 전쟁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치의 실체는 '가치-이익' 복합외교이며, 미·중 패권경쟁의 밖에서 조직화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저개발국가)들의 실리외교다. 여기에서 중국과 G7 국가들이 벌이는 외교는 '가치'를 뒤로 하고 철저히 '이익'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히로시마 G7 이후 탈동조화(디커플링) 대신 탈위험화(디리스킹)가 새로운 유행어로 등장한 것이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G7 대신 E7(Emerging 7)을 새로운 주역으로 주목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터키, 브라질, 멕시코 등 E7 국가들은 2030년에 G7 국가들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직된 한국 외교, 광폭 일본 외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가한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월 21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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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한국전쟁으로 지구적 수준에서 냉전체제가 확정되는 이면에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를 잇는 공간에서 비동맹 운동이 개시되었던 것이다. 1954년 네루와 저우언라이가 평화 5원칙을 발표하고,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에서 평화 10원칙이 채택된 것이 그 효시였다. 과거 냉전 시기에 이들 비동맹 국가들은 국제정치에서 존재감이 미미했으나, 사회경제적 실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반둥회의를 적대시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여기에 참석해서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중·일 관계를 시동했다. 같은 시기 북·일 관계에서도 시동을 걸고 있었다. 일본은 냉전체제의 안에 서면서도 밖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일관계 '정상화' 이후 한국이 '가치외교'의 전선에서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일본은 한반도의 또 다른 당사자 북한을 상대로 '광폭외교'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27일 기시다 총리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자 이틀 후 북한 박상길 외무성 부상이 "일본이 변한다면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서 6월 8일에는 기시다 총리가 발언의 수위를 높여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을 위해 자신이 직할하는 채널을 이용해서 고위급 협의를 실시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북한은 아베 내각 시기 일본에서 대북 문제를 총괄했던 기타무라 시게루가 기시다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른바 '절친'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과 일본이 주고받는 메시지의 수준이 높아지고 템포가 빨라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 정상화의 실적을 밑바탕으로 북·일 국교 정상화라는 일본 외교의 숙원을 달성하여, 대 한반도 '등거리 외교'를 부활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남북한 사이에서 벌인 등거리 외교는 한일 1965년 체제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 점에서도 1965년 체제는 부활하고 있다. 나아가 등거리 외교를 통해 일본이 한반도 관리를 주도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극동 1905년 체제의 부활이다. 대전환의 입구에 서 있던 한·일 관계를 거꾸로 돌려 세운 힘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 역사적 연원을 두고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남기정 /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남기정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는 평화재단 연구위원과 외교광장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일본의 정치와 외교를 추적 분석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한 일본 시민사회의 평화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시대의 평화론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일본학회 회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저서로 <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전후 일본의 생활평화주의>(편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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