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30 11:23최종 업데이트 24.03.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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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지하철 서울역에 설치된 일회용 교통카드 발매기에 '현금 결제만 가능' 표시가 붙어 있다. 현금 결제만이 가능한 교통카드 발매기는 외국인들의 한국 관광에 하나의 '벽'처럼 자리하고 있다.박장식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도 가능한 데다, '아날로그 국가'로 여겨졌던 일본에서도 도입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있다. 신용카드 그 자체로 대중교통 요금을 결제하는 일, 이른바 '오픈 루프' 말이다.

한국에서도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이용한 대중교통의 결제가 가능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신용카드의 경우 이른바 PayOn(페이온)으로 대표되는 국내 전용 후불교통카드가 탑재돼 있는 경우에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온전히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만으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셈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비접촉 결제(EMV Contactless)가 지원되는 신용카드라면 쉽게 대중교통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 먼저 지원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지원된다. 반면 한국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역의 교통카드 발매기에서부터 '신용카드 불가'를 내거는 실정이다.

교통카드 안 사도, 현금 없어도... '내 카드'로 대중교통 타네

만일 해외여행에 초점을 맞춘 신용카드, 그중에서도 '컨택리스' 표시가 있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면, 또는 '애플 페이'를 쓰고 있다면 적어도 싱가포르에서는 기념품 용도를 겸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교통카드를 구매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가 교통카드와 완벽히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로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 역시 꽤나 넓다. 택시부터 시작해 'MRT'로 대표되는 지하철 노선과 경전철, 시내버스까지 신용카드를 교통카드 찍듯 이용하면 된다. 특히 교통카드로만 가능할 법도 한 환승할인까지 신용카드로 적용이 된다는 점이 신기하기만 하다. 싱가포르가 '오픈 루프'를 적용한 덕분이다.

'오픈 루프'는 비접촉 결제, 즉 EMV 컨택리스가 지원되는 신용카드를 교통카드로 대표되는 기존 대중교통 요금 결제망과 호환될 수 있도록 도입한 것을 의미한다. 2010년대부터 EMV 컨택리스를 도입한 비자·마스터카드·유로페이 등 국제 결제사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결제 방식이다.
 
싱가포르 시내버스에서는 교통카드 단말기(왼쪽)에 교통카드인 '이지링크'의 로고 뿐만 아니라 마스터카드·비자 로고도 함께 있어 '오픈 루프'가 지원됨을 알 수 있다. 해당 정책을 알리는 전단지(오른쪽)도 버스나 지하철마다 붙어 있다.박장식
 
해외는 어떨까.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해외여행지인 일본 후쿠오카에서도 지하철에 '오픈 루프'가 도입됐다. 오사카의 경우 2025년 열릴 엑스포를 대비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오픈 루프' 시범 운영에 들어가는 등, 일본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신용카드를 활용한 교통 요금 결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모든 노선에 '오픈 루프'가 도입되지 않았더라도 해외 이용객의 비중이 높은 곳에서 EMV Contactless가 지원되는 곳도 있다. 대만 타이베이가 대표적이다. 타이베이MRT는 교통카드를 이용해야 하지만, 타이베이 도심과 타오위안 국제공항을 잇는 공항철도는 표를 끊을 필요 없이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로 열차에 탈 수 있다.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으로 향하면 신용카드로 교통카드를 대체하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네덜란드의 경우 마스터카드와의 협업을 통해 전국 모든 교통수단에서 교통카드와 함께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끔 했고, 호주 시드니는 버스와 지하철뿐만 아니라 페리도 신용카드를 교통카드 찍듯이 결제한 뒤 탈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서유럽의 경우 주요 대도시의 대중교통 수단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한 '탭 투 페이'가 당연한 일이 된 지 오래다. 자신의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쓰던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만 있으면 현금으로 승차권을 발권하거나, 교통카드를 구매하는 복잡한 절차 없이 전 세계를 손쉽게 누빌 수 있는 셈이다.

관광객 잡는 데 도움 되지만... 한국에서는 왜 안 될까

한국의 경우 세계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망을 활용해 대중교통 요금 결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PayOn이 도입된 시기만 해도 1997년이니, 올해로 벌써 27년이나 됐다. 하지만 빠른 시작과 다르게, 비자·마스터카드 등 국제 카드망과 국내 교통 결제망의 호환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실정이다.

반면 대중교통에서의 '현금 없는 사회'는 세계적인 추세다. 이른바 '콘택리스'를 지원하지 않는 신용카드만 갖고 있더라도, 충전된 교통카드와 일회용 승차권을 자신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단기여행자 전용 교통카드 구매에 신용카드를 지원하는 일본 도쿄의 사례도 있다.
    
한국의 주변인 일본·대만에서도 '오픈 루프'가 실시된 곳이 많다. 왼쪽은 일본 쿠마모토 시영전차에 부착된 VISA·JCB 카드 호환을 알리는 홍보물, 오른쪽은 대만 타오위안 공항철도 개찰구에 설치된 신용카드·QR 단말기.박장식
 
해외에서 대중교통 금액 결제에 '오픈 루프'를 실현해 국제 카드망과의 호환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이다. 외국인 관광객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에 가장 어려운 점은 각 나라에 맞는 교통카드, 현금 등의 지불수단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있는데, 이 번거로움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현금이 대중교통 요금 지불 수단에서 사실상 탈락했기에 '오픈 루프'가 절실하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시내버스가 '현금 없는 버스'로 바뀌면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선택지가 꽤나 줄어들었다. 교통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단기체류 관광객들이 시내버스 등에서 요금을 낼 방법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신용카드로 교통카드 요금 충전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나마도 국내 이용객을 위해 교통카드 어플리케이션 등으로 수수료를 공제한 뒤 결제하는 등,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선에 그친다. '현금 없는 버스'를 일찍이 시행한 국가에서도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오픈 루프'를 도입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셈.

이른바 '오픈 루프'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있을까. 한 지역 교통공사 관계자는 "국내 교통카드 결제망을 해외 NFC 결제망과 호환이 가능하도록 열기 위해서는 기존 교통카드 회사를 비롯해 국내 신용카드사와의 협의가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이 협의가 현재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전국호환 교통카드'가 정책으로 도입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됐듯이 정책적인 마련만 이뤄진다면 빠른 해결이 가능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상황으로 '언제쯤 도입이 가능하다'라고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어려운 부분들이 해결만 된다면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에 열린 대중교통'의 마지막 단추, 꿸 수 있을까
 
'현금 없는 시내버스'의 도입은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 관광에 하나의 벽으로 더해진 지 오래다. '오픈 루프'의 도입이 불편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박장식
 
국제 신용카드사들도 한국 시장에서의 EMV 콘택리스의 도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에서의 '오픈 루프' 도입 역시 업계에서의 큰 화두다. 업계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9월까지의 해외 발행 신용카드를 활용한 EMV 컨택리스 결제는 2022년 같은 시기에 비해 17배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2022년부터 애플페이가 대한민국에 도입되면서 EMV 컨택리스 결제망을 갖춘 식당·카페 등 일반 가맹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건이 갖춰진 이상, '오픈 루프'가 대중교통에 도입만 된다면 내국인도, 외국인도 내가 쓰던 신용카드를 교통카드 쓰듯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오픈 루프' 도입에 적극적인 결제사도 있다. 비자코리아는 지난해 5월 한국관광공사, 그리고 국내 교통 운영 기관과 해외 관광객의 관광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국내 신용카드사, 특히 PayOn과의 협의 등이 남은 과제이지만, 첫 물꼬를 텄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대중교통은 오랫동안 한국 개인 관광의 '벽'으로 여겨져 왔다. 다른 국가와 달리 '일일 승차권', '관광 패스' 등이 빈약해 번거로웠던 데다, 해외에서의 '오픈 루프' 도입에 반해 한국에서는 시내버스를 중심으로 현금 결제마저 사라져가는 추세에 접어들면서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내·외국인 격차가 점점 벌어져 가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방문객은 1100만 명에 달한다. 그중 대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국을 돌아보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도 '관광 대국' 못지않은 교통 접근성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오픈 루프'의 빠른 도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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