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분류업무
구교형
사실 교회 규모가 크든 작든, 목회자의 일상은 여러 가지 업무로 제법 바쁘다. 그러나 택배를 하는 도중에는 다른 여력이 거의 없었다. 머릿속에는 주일설교에 대한 부담이 크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 정도로 지쳐 성경 읽고 기도한다고 앉아 있으면 꼬박꼬박 졸다 이내 드러누워 자게 된다.
그러나 교인들이 택배하는 걸 알게 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자신들과 한껏 가까워졌다며 제법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젊은 청년들이 일부러 '목사님 수고하신다' '멋지다'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나 역시 택배 물품을 받아보는 소비자로만 살다가 그때부터 택배 기사들을 무심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에, 집(사택)은 4층에 있었다. 3~4층 교회와 집에 오는 택배는 전부 위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3층 시작되는 계단에 택배 올려놓는 탁자를 놓아두어 거기까지만 오도록 써 붙였다. 가끔 큰 상자 여러 개로 주문한 교회 물건들이 오는 날 집에 있으면, 미리 택배 기사에게 연락해 1층에서 함께 올려가고 약간의 수고비를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부동의 주택구조 1위는 당연히 아파트다. 그러나 내가 배송을 시작했던 가리봉동은 그 흔하다는 아파트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물론 가리봉동도 요즘은 곳곳마다 재건축, 신축 붐이 한창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연립, 빌라 등 다가구 주택이 많아 택배 기사들은 좁은 도로에 눈치 보며 차를 세워놓고 일일이 들고 지고 오르내려야 한다.
소비자는 주문 물품마다 꼬박꼬박 2500~3000원씩의 택배비를 지출하지만, 택배 기사들에게 돌아오는 수수료는 개당 700~800원 수준이다. 1000원도 안 되는 수수료에 옥탑 꼭대기까지 물, 세제, 아이스박스를 지고 올라가고도, 이런저런 푸념을 들을 때는 불평과 욕설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목회자로, 운동가로 살면서 관념적으로 이해하던 치열한 삶의 현장을 피부로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저 단편적으로 겪은 힘든 노동을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에도 짧게 적었듯이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는 치열하고 고된 삶의 현장을 함께 나눠볼 예정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서로 느끼게 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때로 답답하고 함께 고쳐보고 싶은, 그러면서 간간이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눠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시련과 고난, 고생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피해 갈 수 없다. 도대체 그때 그 시련을 어떻게 견뎌내고 이겼는지도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 때문에 사람 되고, 그로 인해 성숙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참 깊고, 오묘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진다. 개인도, 사회도, 민족도, 역사도 그렇다. 택배 기사들도 자주 그걸 느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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