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5 04:52최종 업데이트 24.01.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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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중국 상하이의 마이크론 본사 건물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국(CAC)은 마이크론이 사이버 보안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후 국가 안보 위험을 이유로 미국의 주요 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론의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를 금지했다. ⓒ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중국 당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제품에 대해 제재를 했다는 뉴스, 혹시 보셨나요? 중국 정부의 발표 이후 곧바로 우리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졌으니 대통령님께도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뉴스에 대해 대통령님께 설명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 건 우리 언론의 보도만 좇다가는 대통령님의 기존 반도체 관련 여러 실책에 또 다른 실책을 하나 더 쌓을 것 같아 미리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중국, 마이크론 제재' 한국언론과 외신의 차이

먼저 우리 언론이 보도한 관련 기사를 보겠습니다.

중국, 마이크론 제재… 미 반도체기업 첫 직접 타격 – 조선일보
중, "마이크론 구매 금지"… 미국 반도체 처음으로 제재한다 – 중앙일보
중국,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첫 직접 제재 – 동아일보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에 대한 한국 언론의 기사 제목 ⓒ 구글 뉴스 검색

 
한국 주요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해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를 금지하는 맞불을 놓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번 중국의 발표가 실린 CAC(Cyberspace Administration of China) 웹사이트에 가서 발표 내용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중국 CAC(Cyberspace Administration of China) 발표 내용 ⓒ CAC

 
"중국에서 판매되는 마이크론 제품, 사이버 보안 심사 통과 못해"라는 제목의 발표문입니다. 내용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같이 보시죠.

"마이크론의 제품은 상대적으로 심각한 잠재적인 네트워크 보안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중국의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중국의 "네트워크 보안법" 및 기타 법률 및 규정에 따라 "중국의 주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는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와 함께 이번 조치는 "국가 핵심 정보 인프라의 보안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며, 중국은 높은 수준의 대외개방을 계속 추진하고 있고, "중국의 법률과 규정을 준수하는 한 모든 국가와 다양한 플랫폼의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론의 반도체를 중국의 주요 정보 인프라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핵심인데, 이걸 거꾸로 해석하면 주요 정보 인프라를 제외하면 마이크론의 반도체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됩니다. 이런 내용을 보지 않고 "중국, 마이크론 구매 금지" 같은 제목만 보면 상황을 오판할 수 있는 겁니다.

관련 소식을 전한 외신 보도를 보면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됩니다.

중국, 마이크론 제품 보안 심사 탈락시켜, 일부 구매 금지" – 로이터
중국,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메이저 칩 제조업체 마이크론 축출 - BBC
중국, 보안 위험 이유로 주요 인프라에 마이크론 제품 축출 – 파이낸셜타임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에 대한 외신의 보도 ⓒ 구글 뉴스 검색

 
외신의 기사 제목이 "주요 정보 인프라" 부분에서는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단하겠다는 중국의 발표 내용과 훨씬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이 이번 조치에 따른 영향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했는지 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로이터통신의 보도를 인용하며 기사를 시작했는데 "마이크론 입장에서 중국은 미국·대만에 이어 셋째로 큰 시장이라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마이크론이 중국에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될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마이크론 입장에서 중국은 미국·대만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라 타격이 불가피"하단 말을 반복했습니다. 통신사의 기사를 세 언론이 나눠 쓴 게 아닌가 싶어서 기자 이름을 확인해 보기까지 했습니다. 기자 이름은 다 다른데 어떻게 저렇게 표현까지 똑같은 분석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정작 로이터통신은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애널리스트들은) "마이크론의 D램과 낸드 제품은 서버용으로 사용하는 양이 적기 때문에 중국 매출의 대부분이 통신사와 정부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따라서 마이크론에 미치는 궁극적인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에 수입되는 마이크론의 제품 대부분은 중국 이외의 기업이 중국에서 상품 제조를 하기 위해 쓴다"는 것이 이 같은 분석의 근거입니다.

중국이 구매를 중지하겠다고 하니 타격이야 있겠지만 그 영향이 한국 언론의 분석대로 "막대"할지, 로이터의 분석대로 "상당히 제한적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 외신의 분석이 훨씬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우리 반도체 사업엔 어떤 영향이?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투자 제한 등 미국이 이제껏 중국에 한 무역 제재에 비하면 중국의 이번 발표는 사실상 제재를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을 제재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준 정도에 불과한 거죠. 중국도 미국도 딱히 큰 피해를 입지 않는 수준에서 정치적인 표현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언론이 앞장서서 호들갑을 떨 내용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중국의 이번 발표에 대한 상황 판단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 일이 우리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메모리 반도체 생산 세계 3위인 마이크론이 고객사를 잃으면 1위와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제재 때문에 아직 공급 능력이 충분치 않거든요. 그런데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국이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한국이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가 중국에 반도체를 판매하지 못하게 됐다고 우리 정부에게 사기업의 반도체 판매를 못하게 하라는 건 명백한 내정간섭입니다.

이 같은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해 우리 대신 중국이 먼저 나섰습니다.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한국 반도체 기업의 판매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결연히 반대"한다며 공급망 수호에 대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마이크론에서 받던 반도체 중 일부를 한국 기업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입니다.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이 줄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여간 다행인 일이 아닙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중국이 자국의 일부 정보 인프라 프로젝트에 한해 마이크론 제품 사용 금지를 결정했습니다. 마이크론의 중국내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 금지에 해당하는 물량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은 이번 결정으로 마이크론과 미국 반도체 산업에 큰 타격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대한 최소한의 반격을 통해 미국에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향해서는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중 하나로 삼아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반도체 팹리스 기업 수출·투자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대통령님이 해야 할 일이 뭘까요? 답은 쉽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중에서 발생한 사소한 사건일 뿐입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반사이익이 있으면 그걸 즐기면 되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대통령님께 마이크론의 물량을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대체하지 못하게 하라고 요구하면 중국이 우리의 적성국도 아닌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어떻게 사기업에게 그런 간섭을 할 수 있느냐며 발을 빼면 됩니다.

지난 22일,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고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사업을 하니 양쪽을 감안해서 잘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대통령님께 설명을 드리는 건 평소 대통령님의 스타일 때문입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외교 문제를 만든 전력이 많은 대통령님이 이번 중국의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 제재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의 보도만 보고 먼저 흥분해서 미국 정부 편을 들며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우리가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발언을 할까 봐 걱정이 돼서 이러는 겁니다. 미국에 "심리적" 점수를 따겠다고 중국에서 실리를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 겁니다.
 

전경련이 발표한 "최근 4년간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 점유율" 중국이 빠진 자리를 대만과 베트남이 차지했습니다. ⓒ 전경련

 
지난 9일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 내 주요 국가별 시장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중국산 반도체 점유율이 18.5%p 하락해서 4위로 밀렸다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줄곧 1위를 차지하던 중국이 4위까지 밀려날 때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어느 나라일까요?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아닐까 기대하겠지만 실제로 점유율을 높인 건 대만과 베트남입니다. 대만은 점유율이 두 배 가까이 늘어서 1위를 차지했고, 베트남의 시장 점유율도 네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1.8%p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중 갈등 중에 한결같이 미국과 보조를 맞췄지만 미국에선 다른 나라에 비해 큰 이익을 보지 못했고 중국에선 반도체 판매가 급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외교의 기본은 국익입니다. 국익은 동맹인 미국 편에 서서 보조만 맞춘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걸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국면에서 대통령님만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서 일정 수준의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마이크론이 빠진 자리를 한국 기업이 채우지 못하도록 하라는 주문은 미국이 해서도 안 되는 간섭이지만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혹시 잘 모르겠다 싶으면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의 이 발언을 떠올리기 바랍니다.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고 기업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이게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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