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4 17:58최종 업데이트 23.05.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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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버스 혼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 ⓒ 박장식

 
밤 10시가 넘은 시각의 서울 도로는 한산하다. 앞선 저녁 시간에 꽉 막혔던 곳들도 어지간하면 밤 9시, 10시 후엔 길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따금 사고나 갑작스러운 차량 증가로 정체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평소에 비해 뻥 뚫린 길이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밤 10시 이후엔 한산한 일반차로와 버스가 길게 늘어선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대비된다. 서울 강남대로 이야기다. 이곳은 유독 밤일수록 버스전용차로가 제 기능을 상실하는 이상한 장소가 되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강남대로 버스전용차로의 과밀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아예 밤이면 밤마다 버스가 옴짝달싹도 못 하고 갇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정거장 가는 데 30분도 더 걸려

지난 17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서울 논현역 중앙 버스전용차로 정류장 앞 횡단보도. 시원스레 뚫려 쌩쌩 오가는 승용차들 사이로 웬 큼지막한 차 벽이 보인다. 차 벽의 정체는 시내버스다. 강남대로 중앙차로를 오가는 버스들이 다른 버스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그대로 멈추어 서 있다. 

이 차 벽, 생각보다 길다. 위로는 신사역에서부터 시작한 이 버스들의 행렬은 뱅뱅사거리 인근까지 3km 넘게 이어진다. 서울 시내버스부터 시작해 공항버스, 그리고 인천이나 경기도에서 강남을 오가는 광역버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논현역 정류장 후미에서 10시 5분경 들어온 시내버스를 타봤다. 목적지는 다음 정류장인 강남역 정류장. 거리는 650m 남짓, 걸어서 넉넉잡아 10분이면 간다. 하지만 버스는 정류장을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한다. 논현역 정류장 맨 앞에 버스가 신호대기로 멈춘 시각은 10시 10분이었다.

신호대기 이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해도 버스 반 대 정도의 길이밖에 차가 나아가질 못했다. 버스가 300m 남짓 거리의 신논현역사거리까지 가는 시간도 15분 넘게 걸렸다. 승객들은 답답하다. 몇몇은 체념한 듯한 얼굴로, 일부는 우왕좌왕하는 표정으로 버스 안팎을 바라봤다.

버스 기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버스 기사는 "두 정거장 가는 데 한 시간이 족히 걸린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사는 "작년부터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더라. 낮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7시에서 8시만 넘어가면 광역버스 타는 사람들이며, 시내버스 타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는 통에 난리가 난다"라고 말했다.
 

강남대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위에서 시내버스들이 옴짝달싹도 못한 채 멈추어 서 있다. ⓒ 박장식

 
교차로 위에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신호를 두 번, 세 번 받고도 버스가 나가질 못한다. 그렇게 겨우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37분. 650m 남짓 가는 데 32분이 걸린 셈이었다. 버스에서 겨우 내린 승객들의 얼굴에도, 계속 버스에 남아야 하는 기사의 얼굴에도 피곤함이 가득하다.

전용차로를 가득 메운 버스로 피해를 보는 것은 시민들이다. 늦은 밤마다 교통수단의 기능을 상실하는 버스를 피해 지하철로 향하는 시민들도 늘었지만, 상당수 지역은 버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해야 한다. 매일 벌어지는 고단한 퇴근길은 적응하려야 적응할 수 없는 불편한 길이 되었다.

버스 정체는 사고 위험으로도 직결된다.

강남대로를 경유하는 어느 노선의 전 구간 평균 운행 시간은 약 3시간 50분이다. 하지만 버스 과밀 현상이 벌어지는 심야시간대에는 약 4시간 30분에서 5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이 노선을 운행하는 업체의 설명이다. 이런 탓에 기사들이 '마지막 운행'을 전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니 사고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광역버스 탓? 대책 없었던 탓

그렇다면 강남대로 버스 과밀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광역버스가 강남역으로 많이 가서 혹은 광역버스 입석을 다시 금지해서라고들 하지만, 이미 수용량을 초과한 중앙차로에 광역버스는 '혼잡'의 일격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

강남대로는 이미 다른 중앙 버스전용차로에 비해 많은 버스 노선을 품고 있다. 이는 심야·맞춤 버스를 제외한 경유 노선 수의 수치로도 드러난다. 종로 버스전용차로의 종로2가 정류소는 25개의 버스 노선이 경유하고, 도봉로 버스전용차로의 수유역 정류소는 19개의 버스 노선이 경유한다.

강남대로는 어떨까. 강남대로 신분당선 강남역(양재역 방향) 정류장의 경우 무려 51개의 버스 노선을 품고 있다. 강남대로를 경유하는 광역버스의 비중이 높다고는 해도 이미 다른 전용차로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의 버스가 오가고 있다.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에 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 박장식

 
중요한 것은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의 수용량이다. 강남대로는 추월 차로가 없는 형태의 기본적인 버스전용차로다. 교통 분석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따라 수용량이 다르긴 하지만, 이런 버스전용차로에서는 시간당 220대에서 많게는 280대의 버스가 최대 수용 가능하다.

하지만 51개 노선이 모두 10분 배차로 운행한다고 가정해도 이미 시간당 300대가 넘는 버스가 강남대로를 경유한다. 실제 강남대로를 경유하는 상당수 버스의 배차 간격은 이보다 더 짧다. 

2022년 이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신분당선과 코로나19다.

2016년 1월 2단계(정자~광교) 구간을 연장 운행하게 된 신분당선으로 인해 수원 광교, 용인 수지에서 강남을 오가던 광역버스가 줄어들면서 강남역의 버스 수용량에 여유가 생겨났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이미 운행하던 시내·광역버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버스들의 평균 배차 간격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사이 새로 개통하는 광역·시내버스 노선 수가 늘어났다. 여기에 2022년 들어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서서히 해제되고, 같은 해 하반기 들어 버스 업계가 인력을 충원하고 버스 운행 횟수를 정상화 하기 시작했다. 

BRT 라면서 수용량 관리도 승하차 대책도 없어

가장 큰 문제는 '도로 위의 전철'이라고도 불리는 간선급행버스체계, 즉 BRT를 표방하는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도로 중앙에 줄 긋고 도로 위 전철이라고 우기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은 탓이다. 수용량 관리도, 승하차를 더욱 편리하게 하기 위한 대책마저도 BRT 개통 이후 1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없었다.

강남대로가 출퇴근 시간이 끝난 이후 정체를 빚는 가장 큰 원인은 버스가 여러 번 멈추는 것이다. 강남대로를 포함해 중앙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버스들은 정류장 맨 뒤에서 승객을 내려 준 중간에서 승객을 한 번 태우고, 횡단보도 앞에서도 승객을 한 번 더 태우고 나서야 출발한다.

결국 정체의 원인이 되는 승하차 지연을 막기 위해서는 강남대로 선상의 정류장에 지정 승차 구역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카메라 등을 활용해 버스가 들어오기 전에 승차 구역을 정해 버스가 중앙차로 위의 정류장에서 단 한 번만 멈춰도 되도록 바꾸는 것이다. 이미 홍대입구·서울역의 버스전용차로 정류장에서 시범적으로 도입된 바 있는 제도다.
 

양화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 선상의 홍대입구역 정류장에는 버스 정차를 위한 플랫폼이 지정되어 있다. 버스들이 잘 지키지는 않는다지만 이 지정 승차 제도를 강남대로에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 박장식

 
세종 BRT, 고양시의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는 혼잡한 정류장에 노선에 따라 지정 승차 구역을 정해두고 있다. 고양시의 경우 승강장 앞쪽에서는 일반 버스를, 뒤쪽에서는 광역버스만을 타게 하는 방식으로 느슨한 분리를 하고 있지만, 승하차 지연으로 인한 정체를 상당수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남대로 역시 광역버스가 상당수 경유하는 특성상 정류장 진입 전에 정차 구역을 정하는 이러한 지정 승차 구역 제도를 도입하면 좋은데 하지 않아 아쉽다.

수용량 관리에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강남대로 버스전용차로의 경우 일부 버스들은 테헤란로·사평대로와 만난다는 이유로 두 세 개의 정류장만을 경유하기도 한다. 이런 버스들은 무리하게 중앙버스전용차로로 들어오기보다는 가변 차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이미 두 번 겪은 '버스철' 더는 안 돼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기차처럼 버스가 늘어섰다는 의미의 '버스철'을 겪은 것은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처음 개통한 2004년이 처음이었다. 강남대로는 2004년 서울특별시의 시내버스 대개편과 맞물려 서울 전역에 개통한 중앙 버스전용차로 중 하나였지만 유독 버스 과밀 현상이 빚어졌다.

당시 서울특별시의 정책은 간선버스들을 중앙 버스전용차로로 다니게 하고, 지선버스를 바깥 가변차로에 다니게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강남대로에서는 광역버스며 간선버스며 지선버스까지 모든 버스가 중앙 버스전용차로로 들어왔다. 결국 강남대로를 시작으로 개편 논란이 커지며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대시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버스철' 논란은 2014년에도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안전 후속 대책으로 광역버스의 입석을 금지하면서 광역버스 차량 자체가 늘었다. 그런 탓에 중앙차로에 한 번 들어온 버스가 옴짝달싹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일부 광역버스를 가변 승강장으로 빼냈다.

벌써 세 번째 벌어지는 이번 논란의 표면적인 이유도 똑같다. 서울의 바깥과 서울을 연결하는 광역버스가 버스전용차로를 막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9년 전의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시스템의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원인이라는 것을 이미 수용량을 초과한 중앙버스전용차로 위 버스가 말해주고 있다.

단순히 광역버스를 빼내는 데서만 그치면 안 된다. 서울 남부를 비롯한 수도권 남부 일대의 택지 개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도 강남으로 향하는 버스는 분명히 출발할 것이다. 버스전용차로의 체질 개선을 비롯해 수요 분산을 위한 환승센터 등의 대책이 있어야 '버스철'을 겪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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